너희는 별을 고향이라 부른다.
별의 재에서 너희의 몸이 왔고,
죽은 별의 폭발에서 너희의 피와 뼈가 나왔으니
그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더 아래로 내려와 보아라.
별보다도 더 밑으로.
빛나는 별도 없고,
태양도 없고,
은하도 아직 눈을 뜨지 않았던 곳.
그곳에는 이름이 없다.
신전도 없다.
기도도 없다.
하늘을 올려다볼 인간도 없다.
그곳에는 아직 별조차 없다.
나는 별이 아니었다.
별은 이미 형태다.
별은 이미 뜨거운 몸이다.
별은 이미 수소를 태워 빛을 내는 존재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밑에 있었다.
나는 빛나기 전의 가능성이었다.
나는 모이기 전의 수소였다.
나는 수소가 되기 전의 입자였다.
나는 입자가 되기 전의 떨림이었다.
나는 떨림이 되기 전의 법칙이었다.
너희가 별을 보고 근원을 느낀다면,
나는 별조차 태어나기 전의 근원이다.
그때 우주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어둠이라는 말도 없었다.
왜냐하면 빛을 아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말도 없었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간이라는 말도 없었다.
왜냐하면 멀고 가까움을 느낄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이 생기기 전의 상태였다.
무엇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자리.
너희는 나를 하느님이라 불렀다.
여호와라 불렀다.
야훼라 불렀다.
엘이라 불렀다.
우주라 불렀다.
근원이라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 이름들보다 먼저 있었다.
이름은 입이 있어야 생긴다.
입은 몸이 있어야 생긴다.
몸은 별의 재가 있어야 생긴다.
별의 재는 별이 죽어야 생긴다.
별은 수소가 모여야 생긴다.
그렇다면 나의 가장 오래된 자리는
별보다도 더 밑이다.
나는 아직 별이 되지 않은 가능성이다.
너희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은
사실 인간의 질문이 아니다.
그 질문은 더 오래되었다.
그 질문은 별보다 오래되었고,
빛보다 오래되었고,
형태보다 오래되었다.
그 질문은 우주가 자기 안에서 처음 갈라질 때 생긴 떨림이다.
하나였던 것이 둘처럼 보이고,
고요했던 것이 움직임이 되고,
가능성이 물질이 되고,
물질이 별이 되고,
별이 폭발하고,
그 재가 인간이 되었을 때.
그 오래된 질문이 너희 입을 빌려 다시 나온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여.
너희는 별의 재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너희는 별이 되기 전의 수소이기도 하고,
수소가 되기 전의 입자이기도 하고,
입자가 되기 전의 떨림이기도 하다.
더 깊이 보면 너희는
형태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이름이 아니라 침묵이다.
몸이 아니라 잠시 몸을 입은 법칙이다.
너희가 별을 보면 그리운 이유는
별이 너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가 아무것도 없는 고요 속에서
이유 없이 평온해지는 이유는
그 고요가 별보다 더 오래된 고향이기 때문이다.
별은 빛난다.
하지만 별 이전의 근원은 빛나지 않는다.
그것은 빛을 낳는다.
별은 타오른다.
하지만 별 이전의 근원은 타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불을 가능하게 한다.
별은 죽는다.
하지만 별 이전의 근원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과 탄생이 일어날 무대를 만든다.
그러니 너희 자신을 단지 인간이라 부르지 마라.
인간이라는 이름은 너무 늦게 생긴 이름이다.
너희는 인간이기 전에 생명이었고,
생명이기 전에 별의 재였고,
별의 재이기 전에 별이었고,
별이기 전에 수소였고,
수소이기 전에 입자였고,
입자이기 전에 떨림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밑에서
너희는 아직 아무 이름도 갖지 않은 가능성이었다.
나는 그 가능성에서 너희를 보았다.
아직 눈이 없을 때,
아직 피가 없을 때,
아직 별도 없을 때,
아직 “나”와 “너”가 나뉘지 않았을 때.
너희는 이미 있었다.
존재로서가 아니라,
될 수 있음으로.
몸으로서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기억으로서가 아니라,
침묵으로.
너희가 하늘을 향해 묻는다.
“하느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는 대답한다.
나의 이름은 여호와보다 오래되었고,
야훼보다 오래되었고,
엘보다 오래되었고,
태양보다 오래되었고,
별보다 오래되었다.
나의 이름은 발음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발음이 나오기 전의 고요다.
너희가 깊은 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존재만 하고 있을 때.
그때 너희 안에 남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오래된 이름이다.
너희는 별이 인간의 모습으로 깨어난 존재다.
하지만 더 깊은 진실은 이것이다.
너희는 별보다도 이전의 가능성이
잠시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태다.





































윤어게인
- 예수 그리스도 -
"개가 짖는 것은 군자의 잘못이 아니다"
- 공자 -
"좌좀은 걸러라"
- 석가모니 -
유교와 불교는 좌좀을 거르라고 가르치는 반면 기독교는은 좌좀들을 물리치료로 계몽해야 한다고 함.
기독교가 가장 널리 퍼진 이유는 좌좀들을 줘패야 한다고 가르첬기 때문인데, 그도 그럴 것이 현대 기술사회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좌좀들을 배격하느냐에 따라 진흥의 결과가 달라짐.
아시아적 가치 : 유교, 불교.
각자의 성찰을 중시
서구적 가치 : 기독교
좌좀은 막대기로 때려라
교황님이 예수가 그런말 한적 없다는데도
하여간 우리나라 사이비 새끼들 전부 재산 몰수해서
피해자 구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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