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대중 정부 이전의 교전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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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기조: 엄격한 한미 연합 방위태세와 대북 강경 기조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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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할 경우, 차단 기동(밀어내기)을 거쳐 경고사격 및 조준사격 등 단계적 대응을 하도록 비교적 현장 지휘관의 자율성과 적극적인 대응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2. 김대중 정부에서의 교전수칙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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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의 4대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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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라.
(NLL 자체는 강력히 엄수) -
우리가 먼저 발사하지 말라.
(선제사격 금지 및 엄격한 비선제 대응 원칙) -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수칙에 따라 격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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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라.
3.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평가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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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해 내려왔을 때 우리 해군 고속정들은 '선제사격 금지' 및 '경고사격 ? 차단기동 ? 본사격'이라는 4단계 대응 절차를 엄수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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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북한군이 준비된 기습 선제사격을 가해왔고, 우리 장병들은 대응이 늦어지며 큰 피해(6명 전사)를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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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권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교전수칙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만들고 우리 군의 적극적인 대응을 묶어두었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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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적이 먼저 이쪽을 쏘고 피를 흘리고 디질때까지 저 빌어먹을 형식적인 4단계를 다 거쳐서 제대로 적에게 사격을 해야한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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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놀이터 싸움에서도 선빵이 제일 중요하다는건 코묻은 급식도 다 아는데 김대중이는 어떻게든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현장지휘관이 바로 알아서 대응하기보다는 저 4단계의 과정 지키기에 급급해서 빠른 대처에서 이미 뒤처짐~~결국 아까운 장병은 김대중 정권이 죽인거라고 봐야됨~~~북한의 기습을 초동에 제압하지 못한 원인 제공자는 김대중과 그 일당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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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이 그 이후 월드컵 폐막식을 보러 일본에 가버리다.자국 병사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갔는데도 지는 그것보다 월드컵이 더 중요했다는거..그런 인간이 대통령으로 있었다는거 자국 군인이 죽는거보다 북한과 사이가 틀어진게 더 불편하고 걱정이 되었다는 ......진보 성향 매체의 한 군사 전문가조차 대통령이 수도통합병원에 가지 않고 영결식에도 불참한 것은 지금의 정서로는 납득하기 어렵고, 김대중 정부의 과오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 즉...아무리 작은 전투였을지라도 방금 아군과 적군 사이에 전쟁이 있었는데도 월드컵 때문에 일본으로 처 날라간 몰지각한 인간~~지들이 북한 빨기위해서 개정한 교전수칙때문에 아까운 아군 병사가 6명이나 전사했는데도 전사도 아니고 순직으로 처리하다. 이유는 정부와 군 당국은 남북 간의 국지적 교전(이른바 '서해교전')을 정식 전쟁 상황으로 해석하지 않고, 비전시 상황에서 발생한 군사적 충돌로 다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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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가 남북 화해 기조(햇볕정책)에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북한의 도발을 '계획된 전쟁 행위'가 아닌 '우발적 충돌'로 프레임을 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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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공식적인 사태 규정을 엄격한 '전쟁 중의 전사'가 아니라 하위 개념인 '순직'으로 처리함으로써 정치적 파장을 줄이려 했다는거.이 때문에 적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음에도 일반 공무 수행 중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한 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낮은 보상금을 받는 일이 벌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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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에 법이 개정되어서 전사자로 인정받게 되지만 김대중과 그 일당이 보여준 북한에 대한 미친 굴욕외교는 오늘날 지뢰사건하고 쌍둥이처럼 비슷하다는게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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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권도 한국 군인의 목숨보다는 북한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조용히 평화적으로? 넘어가는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설정되어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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