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상황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더라고요.
현장이 조용했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청문회 첫날인 12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자신이 본
참사 현장을 설명하자 방청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가 이태원에 도착한 건 2022년 10월30일
0시45분께, 여전히 심정지 환자들 구조와 이송이
지체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경찰은 참사 직전(오후 6시34분~10시11분) 이어진
‘11건의 신고’에도 출동하지 않은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장면을 수차례 연출했다.
당시 이태원파출소에서 신고를 접수한 순찰2팀장
ㄱ씨(익명 출석)는
“시민이 신고한 것은 (경찰) 조직에 요구한 것이지
파출소에 요구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며
일차적 책임이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현권 당시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접수반장은
“현장에서 상황 보고를 하지 않으면 상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이미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증인 선서와
진술까지 거부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참사의 한 원인이 된 정황도
여럿 드러났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발생 30여분 뒤인
밤 10시51분께, 일주일여 전까지 대통령 경호처
국민소통단장을 맡았던 정재관 군인공제회
이사장에게 ‘집회 피켓 제거’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새로 드러나기도 했다.
‘진보단체가 피켓을 붙여 놓고 가서
우리 당직자들이 긴급히 제거했다’는 내용이다.
박 구청장은 “당시에는 (참사 발생을) 몰랐다”고
했다.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은 “용산으로 대통령실이
오지 않았다면 참담한 사고가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기관들의 무책임과 무관심 속에, 피해자들이 전한
상황은 처참했다.
이태원 참사 피해 생존자인 민성호씨는
참사 당일 생사를 오갔던 기억을 전하며
“(당일 밤) 10시부터 11시까지 세차례는
큰 밀림이 있었다”며 “한 10분이라도 (구조가)
빨랐다면 100명은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씨는 자신 역시 당일 밤 10시40분께
‘세번째 파동’ 직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민씨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인사하려고 통화를
했다. ‘엄마, 나 성호야. 나 죽어가고 있어’
(라고 했다)”며 “4차 파동이 있었다면 저도
순식간에 눈을 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씨의 증언이 이어지자 방청석에서 청문회를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이고
연신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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