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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진호
중국 입장에서 장진호 전투는 세계 최강 미 해병대한테 괴멸적인 피해를 주었고
결과적으로 장진호 전투 이후 UN군은 37선 이남으로 후퇴해서
중국에서는 장진호 전투를 중국의 승리로 봄
하지만
용문산 전투 후 파로호에 수장된건
이야기 안 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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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로 문화혁명을 비판했던 첸카이거가 이런 국뽕 영화를 만들었다는 거 자체가 진짜 새드 엔딩 무비 같네
단....바로 옆 상영관에 "1951년 파로호"라는 영화도 같이 상영하는 조건으로....ㅋ
자들은 사람은 총알과 방패 정도? 일 뿐이니 죽은 애들 카운터도 안 했을 껄요?
저놈들은 지들 1000명 죽고 미군 한 명 죽어도 이긴걸로 생각 할껍니다.
단....바로 옆 상영관에 "1951년 파로호"라는 영화도 같이 상영하는 조건으로....ㅋ
패왕별희로 문화혁명을 비판했던 첸카이거가 이런 국뽕 영화를 만들었다는 거 자체가 진짜 새드 엔딩 무비 같네
자들은 사람은 총알과 방패 정도? 일 뿐이니 죽은 애들 카운터도 안 했을 껄요?
저놈들은 지들 1000명 죽고 미군 한 명 죽어도 이긴걸로 생각 할껍니다.
인명피해 수치 이런 건 애초 고려 대상이 아닌 전투....
제네덜 입장에서 전술적으로 승리는... 뭐... 맞음
내려온 새키들이ㅋㅋㅋ
팔로군이나 조선군들이 중국공산당의 승리에 기여한 공로가 엄청 많았고 상위지도부와 친한
사람들도 많았음.. 사실 중국은 조선보단 대만을 점령하고 싶어했고 대만을 가지고 미국과 조선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딜을 칠려고도 했으나 북한군이 너무 쉽게 밀리고 있었고 이미 중국 국경까지 한국군과 미
군이 오고 있는 형푠에 소련까지 이대로 북한을 포기할순 없다며 지원을 해주면 중국군에 대한 군사원조를
약속함으로써 중국은 대만을 포기하면서 까지 한국전에 참전하게됨.. 그 당시 중국도 새로이 건국된지가
5년밖에 안된지라 아직 완전히 국가체계가 수립되어있지 않은터이고 중공군 역시 완편된지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큰 모험을 한거임..
순전히 김일성이 아니라 엄청남 도움을 줬던 조선팔로군들과 조선인들에 대한 빛을 갚아야 한다는
명분이 크게 작용했던거임..
그러면서도 중국이 가장 두려워 했던것은 혹여 미국이 핵을 쓰지나 않을까 였는데 맥아더의 끊임없는
핵공격 요구에도 우유부단한 트루먼이 3차대전을 우려하여 오히려 맥아더를 해임시킴으로써 한국전은
승리없는 분단의 현실로 가버림.. 저때만 해도 아직 소련과 중공의 핵전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 시절이라
핵으로 공격했다면 분명 승리할수 있던 전쟁이었음..
그리고 중공군을 너무 얕보았던 미군수뇌부와 한국군 수뇌부는 비록 적이지만 명장이었던 팽덕회의 지략에
다 넘어가 버림..
소련이 625에 참전했다는 증거가 속속들어나고 있었지요
그와중에 핵투하는 3차대전의 가능성도 있었지요
우리 입장에서야 아쉽기도 하지만 미국 입장을 이해 못할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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