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식이 효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음!
원래뜻은 진짜 장님이 아니라 배움이 깊거나 머리가 좋은자식은 대처로 가서 고등교육에 서울등 대도시에서 좋은직장 또는 업으로 자리잡고 배움이 얕은 자식은 시골에남아 부모 공양하며 농사짓고 대처에나간 동생이나 형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게됌! 그상황에서 시골에 남은 형이나 동생이 많이배워 효도 하는게 아니라 부모님 근거리에서 아침저녁 으로 보살핀다는 뜻임! 대도시에서 성공하고 자리잡은 자식은 본문의 삼촌 처럼 명절때나 집안 대소사 때나 와서 감뇌라 배놔라 하며 있는건 돈이니 현질로 효도 함!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으나 예전에 다들살기어려울때는 부모 공양하는 자식이 효자가 맞음! 지금도 부모님 자주 찾아뵙고 전화자주 하는게 효의 첫걸음이듯!
사실 병원에 부모님 모시고 오는 건 다 딸들임. 딸이라고 출근을 안해서가 아니아 딸들은 휴가를 내서라도 모시고 가려고 함.
근데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은, 아들들이 제사 안지내려고 하고 그러는 건 사실 아내의 반대임. 제사 준비가 온전히 며느리들의 고생이기 때문도 이유가 되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시댁일이기 때문.
그 당시에는 가난한 집에도 피아노가 있었나요? 아님 제가 문맥을 잘못 이해한건가요? 설명좀 해주세요.
"농촌에 남아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아버지는 IMF로 직장을 잃었고 엄마는 화단에 꽃을 심으러 다녔다."
농촌에 남아 할머니를 모셨다는 말은 보통 농사를 지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데 무슨 IMF 로 직장을 잃어요?
엄마는 화단에 꽃을 심으러 다녔다. - 요즘 말하는 '공공근로'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당시에 무슨 공공근로같은게 있었어요? 나라가 부도가 났는데...
꽃을 심으러 다녔다...
나는 진짜 이해가 안되는데... 그 당시를 겪었던 사람으로서는.
전 50대입니다
제 와이프 결혼하자 젤 먼저 한게 중고 피아노 사는거였어요 시골 6남매중 막내라 피아노 배우고 싶었는데 못해서 갖고싶고 배우고 싶었다고 전자말고 해머로 사더라구요 몇십만원짜리 였지만 엄청 좋아했어요
샀을수도 있고 망해서 이사가던 옆집 순이네가 주고 갔을수도 있는거에요
시골에 살면 전부 농사로 먹고 사나요?
도시근처 시골은 병행하는 사람 많아요 갖고있는땅이 적으면 더더욱 그렇구요
꽃심는건 공공근로다? 조경업체는 전부 imf이후에 생겼을까요?
내가 보고 들은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세상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엮여져 돌아갑니다
에스 플러스님, 저 위의 megumi61 댓글을 보세요. 목숨걸어서 피아노를 사들였다잖아요.
나는 시골동네에서 자랐고, IMF도 겪어봐서 저 "로맹가리" 글에 공감이 안되어요. 그냥 제경험을 토대로 제생각을 써본 것이에요.
아마도 '로맹가리' 가 은유법으로 글을 썼다면 이해가 될 것 같기는 하군요.
제 생각이라 정답은 아니라고 먼저 깔고 갑니다.
1. 아버님이 지금 70대라고 하셨으니 대략 1945년~1950년 사이에 태어나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시절이라면 장손이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고 가장 좋은것을 장손에게 주는 시대입니다. 장손이 공부에 흥미 없고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집의 소라도 팔아서 장손을 대학 보내는게 일반적인 그시절 가정의 모습입니다.
좀 다른 경우이지만, 장녀는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가 거의 없이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글의 아버지는 장손인데, 동생들 뒷바라지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둘째가 대학을 갔다는게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입니다.
물론, 둘째가 동네에서 이름난 신동이라면 상황이 좀 달라질 수 도 있기는 합니다.
2. 둘째가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취업해서 부사장까지 올랐다면 1번의 이름난 신동이라는 가정이 맞을 수 도 있겠습니다.
3. 웬만큼 막나가는 집안이 아니고서야 동생들이 형한테 아들 안낳았다고 막말하는 경우 없습니다. 형 앞에서 형수한테 막말하는건 형한테 한거라고 봐도 되겠지요
4. 할머니가 둘째한테 아들있다고 재산을 다 둘째한테 물려줬다? 음.... 첫째하고 연 끊자는 이야기로 밖에 안들리네요
5. 둘째가 마비가 와서 병원에 입원했을때 작은어머니가 글쓴이에게 딸처럼 지내자고 했다고? 정신나간 사람 아니면 그런말 안합니다. 작은어머니도 자기 형제들 있을텐데 그 형제들하고 놀러다니면 되지 뭐하러 가깝게 지내지도 않은 조카한테 딸처럼 지내자고 할까요?
6. 마비된 둘째는 살아 있는데, 멀쩡하던 작은어머니가 급사를 했네요. 글쓴이 부모님이 70대라고 했으니 급사하신 작은어머니는 60대라고 생각하는게 정황상 맞다고 봅니다. 60대에 급사했다면 사고사 아니면 병사일텐데.... 너무 갑작스러운것 아닌지 싶네요
뭐 실제로 저리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판타지이니까요.
그렇다고 저 글이 소설같다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건, 개연성이라는 것이 많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금색 르망 받기 10여년전부터
택트를 타셨다고요??? 그게 실존
년도가 가능한가요???
그 옛날 집에 피아노도
있으신 집이 택트에 3가족이
타고 다니셨다고요?????
제가 너무 현실 팩폭러인가요?
처음 몇줄글에 팩트상 안맞아
그 뒤 글은 보지도 않았다는...
“10여전” 라는 말은 없고 10여년 동안 택트를 타고 오갔다라는 말 같아요
제 고1때 친구 아버님이 르망 끌고 왔고 저희 아버지는 트럭을 끌고 오셔서 기억 납니다 ㅋ
원래뜻은 진짜 장님이 아니라 배움이 깊거나 머리가 좋은자식은 대처로 가서 고등교육에 서울등 대도시에서 좋은직장 또는 업으로 자리잡고 배움이 얕은 자식은 시골에남아 부모 공양하며 농사짓고 대처에나간 동생이나 형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게됌! 그상황에서 시골에 남은 형이나 동생이 많이배워 효도 하는게 아니라 부모님 근거리에서 아침저녁 으로 보살핀다는 뜻임! 대도시에서 성공하고 자리잡은 자식은 본문의 삼촌 처럼 명절때나 집안 대소사 때나 와서 감뇌라 배놔라 하며 있는건 돈이니 현질로 효도 함!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으나 예전에 다들살기어려울때는 부모 공양하는 자식이 효자가 맞음! 지금도 부모님 자주 찾아뵙고 전화자주 하는게 효의 첫걸음이듯!
사실 병원에 부모님 모시고 오는 건 다 딸들임. 딸이라고 출근을 안해서가 아니아 딸들은 휴가를 내서라도 모시고 가려고 함.
근데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은, 아들들이 제사 안지내려고 하고 그러는 건 사실 아내의 반대임. 제사 준비가 온전히 며느리들의 고생이기 때문도 이유가 되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시댁일이기 때문.
글쓴이는 시부모에게도 잘 할 듯.
자식없는 윤김일성은 오늘도... 쥴리 구멍만...
아가리를 터는구나...역겹다.....
할머니조차..
할머니 구박한다고 잘 못 모신다고 어머니와 아주 대판 싸운적이
몇번있다.
그럴때마다 외아들 7대독자인 아버지는 모른척 하셨고.
진짜 어머니를 죽일듯 하던 고모들이 그때는 참 미웠는데.
나이들고 꼬부랑 할매의 나이가 되신 고모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실때는 어머니와 그냥 같이 늙어가며
만나면 농담따먹기나 하며 웃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리더라.....
모시고 사는 며느리 중요한줄 모르고
어쩌다 와서 돈 몇푼 쥐어주면
그 며느리가 최고인줄 아는 그런 할머니들 내 주변에도 수두룩 ㅠ
왜 자신의 딸이나 손녀들에게 같은 설움을 느끼게 했었는지...전 남자라서 잘 모르겠더라구요!!
에혀.
미워할 필요도없고...
어떻게 가난한 시골 마을, 글쓴이의 가난한 집에 피아노가 있을 수 있나요?
"식혜 갖고 오란 삼촌도 없고, 설거지대신 피아노만 치던 숙모없이."
그 당시에는 가난한 집에도 피아노가 있었나요? 아님 제가 문맥을 잘못 이해한건가요? 설명좀 해주세요.
"농촌에 남아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아버지는 IMF로 직장을 잃었고 엄마는 화단에 꽃을 심으러 다녔다."
농촌에 남아 할머니를 모셨다는 말은 보통 농사를 지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데 무슨 IMF 로 직장을 잃어요?
엄마는 화단에 꽃을 심으러 다녔다. - 요즘 말하는 '공공근로'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당시에 무슨 공공근로같은게 있었어요? 나라가 부도가 났는데...
꽃을 심으러 다녔다...
나는 진짜 이해가 안되는데... 그 당시를 겪었던 사람으로서는.
화단에 꽃을 심으러 다녔다.... '웃기는 개소리.'
그옛날에도 시골에 공장 만씁니다 요즘도 농공단지 흔하듯 웬만한 시골에 죄다 공단 천지입니다
수도권에서는 언듯 이해못할수 있는데 화성, 고양 이정도만 나가도 허허벌판 시골에 죄다 공장만 있지요
둘째 시골이라고 하고 할머니 모신다고만 하니 전형적인 농가 생각하셨나본데 시골아파트 많아요
수도권 같이 브랜드 아파트 생각하면 안되고요 다 썩어도 일단 아파트는 아파트 입니다
제생각에는 걍 시골에 사는거지 엔간한 걍 도시 서민생활아니었나 합니다만
피아노야 좀 흔하진 않지만 잘나가는 삼촌에 택트를 탔든 뭐든 없는 살림에 큰맘먹고 하나 샀는지 누가 압니까
글쓴이가 알겄쥬
뭐 구라문화 때문에 속는거에 민감한건 알겄는데 세상 그래살면 팍팍안하요?
구라치면 그래 쳐라 이래해야지 우째 일일이 발작하면 사쇼?
내가 모르는건 일단 믿어줘야 인생이 여유로워 지는겁니다
아닌말로 구라쳤음 그놈이 잠잘때 불안한겁니다 믿으면 그게 구라든 진실이든 중하지 않어요 잠이 편하다는것이 중하지
나중에 구라라면 그때 화내도 늦지않고 구라다 쳐도 나에게 뭐 피해온게 없음된거아녀
제 와이프 결혼하자 젤 먼저 한게 중고 피아노 사는거였어요 시골 6남매중 막내라 피아노 배우고 싶었는데 못해서 갖고싶고 배우고 싶었다고 전자말고 해머로 사더라구요 몇십만원짜리 였지만 엄청 좋아했어요
샀을수도 있고 망해서 이사가던 옆집 순이네가 주고 갔을수도 있는거에요
시골에 살면 전부 농사로 먹고 사나요?
도시근처 시골은 병행하는 사람 많아요 갖고있는땅이 적으면 더더욱 그렇구요
꽃심는건 공공근로다? 조경업체는 전부 imf이후에 생겼을까요?
내가 보고 들은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세상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엮여져 돌아갑니다
화단, 도로가에 꽃심는 공공근로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어요
제일 웃기는 개소리가 화단에 꽃을 심으러 다녔다... 그 때 IMF를 경험해본 사람은 저런 글 절대로 쓰지 못해요..
세상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엮여져 있다고... 절대 공감. 그렇다면 저런 글을 쓰는 사람도 에스플러스님 글을 유념해서 앞으로는 글을 쓸때 조심해서 쓰기를.
70-80년대 목숨걸어서 피아노를 사들였다고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럴수도 있지 생각하는게 낫지 않아요?
나는 시골동네에서 자랐고, IMF도 겪어봐서 저 "로맹가리" 글에 공감이 안되어요. 그냥 제경험을 토대로 제생각을 써본 것이에요.
아마도 '로맹가리' 가 은유법으로 글을 썼다면 이해가 될 것 같기는 하군요.
그놈의 아들이 뭐가 좋다고 ㅎㅎ
딸 없으면 확실히 건조하고 매마른 느낌이 있음
특히 엄마한테는 딸이 꼭 있어야함
쯧쯔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님
잘컷다 이쁜딸.
진정한 위너네요. 나이가 어느정도 든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저말이 맞네요. 배워갑니다.
그런 늙은이들이 2찍하면서 지 가족에게 했던 무식하고 못난짓을 사회에도 하고 있지
삼촌집 아들들은 제사도 안지내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잘 사는데?
글쓴이는 시집도 못가고 아끼고 아껴서 모은돈으로
겨우 70넘은 부모님 차한대 사준거 외엔 없는 인생인데...
그들은 할머니 제사도 안모시려 눈치보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삶엔 관심없다
돈이 백억천억 있든 없든 상관없다
나만 만족하고 행복하면되는거다라는 철학적결말이다
장자가 이제 제사 안지낼거라니까, 동생들이 노발대발 난리가 났었는데, 그럼 제사 전날 제수씨들 모두 와서 음식 준비하라니까, 아무도 안왔다는 ㅋ
교회다니셔서...
제사는 물건너 가게 되는 집도 많았어요....
금색 르망 받기 10여년전부터
택트를 타셨다고요??? 그게 실존
년도가 가능한가요???
그 옛날 집에 피아노도
있으신 집이 택트에 3가족이
타고 다니셨다고요?????
제가 너무 현실 팩폭러인가요?
처음 몇줄글에 팩트상 안맞아
그 뒤 글은 보지도 않았다는...
글 요지는 남자들 욕인데.. 최초의 악은 할머니구만
살아남은자가 강한거지.
보통은 조카입장에서 미혼일때까지는 삼촌 숙모라 칭하고 결혼후에는 작은아버지 숙부 ,작은 어머님 숙모님 이렇게 님자를 붙히며 좀더 높이는게 상식이고 ㅋㅋㅋ 백이숙제 설명까지 하면 알아 들을란가 모르겠는데 여기서 형제 이름이 백이 숙제 가아니라 형(백)이름이 이! 동생(숙) 이름이 제! 갑오개혁이 언제인데 아직 개몽이 덜된 양반이 가르치려 하네?!
저희 시골은 저런 아들 중심 분위기는 없었는데. 딸들이 시집을 잘가서 그런지.
제 생각이라 정답은 아니라고 먼저 깔고 갑니다.
1. 아버님이 지금 70대라고 하셨으니 대략 1945년~1950년 사이에 태어나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시절이라면 장손이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고 가장 좋은것을 장손에게 주는 시대입니다. 장손이 공부에 흥미 없고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집의 소라도 팔아서 장손을 대학 보내는게 일반적인 그시절 가정의 모습입니다.
좀 다른 경우이지만, 장녀는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가 거의 없이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글의 아버지는 장손인데, 동생들 뒷바라지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둘째가 대학을 갔다는게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입니다.
물론, 둘째가 동네에서 이름난 신동이라면 상황이 좀 달라질 수 도 있기는 합니다.
2. 둘째가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취업해서 부사장까지 올랐다면 1번의 이름난 신동이라는 가정이 맞을 수 도 있겠습니다.
3. 웬만큼 막나가는 집안이 아니고서야 동생들이 형한테 아들 안낳았다고 막말하는 경우 없습니다. 형 앞에서 형수한테 막말하는건 형한테 한거라고 봐도 되겠지요
4. 할머니가 둘째한테 아들있다고 재산을 다 둘째한테 물려줬다? 음.... 첫째하고 연 끊자는 이야기로 밖에 안들리네요
5. 둘째가 마비가 와서 병원에 입원했을때 작은어머니가 글쓴이에게 딸처럼 지내자고 했다고? 정신나간 사람 아니면 그런말 안합니다. 작은어머니도 자기 형제들 있을텐데 그 형제들하고 놀러다니면 되지 뭐하러 가깝게 지내지도 않은 조카한테 딸처럼 지내자고 할까요?
6. 마비된 둘째는 살아 있는데, 멀쩡하던 작은어머니가 급사를 했네요. 글쓴이 부모님이 70대라고 했으니 급사하신 작은어머니는 60대라고 생각하는게 정황상 맞다고 봅니다. 60대에 급사했다면 사고사 아니면 병사일텐데.... 너무 갑작스러운것 아닌지 싶네요
뭐 실제로 저리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판타지이니까요.
그렇다고 저 글이 소설같다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건, 개연성이라는 것이 많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기와공장하던 유지묜 뭐함 거의 양자 아들한테 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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