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부지 1960년 17세 때 고등학교 진학 포기하시고 홀어머니와 함께 농사 일 하셨습니다.
21세 때 군대 가셔서 훈련소 조교로 복무하셨는데 농사 일 하시다가 군대에 오니
온갖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시면서도 농사 일보다는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셨답니다.
나중에 군 간부가 아버지 군생활 잘 하시는거 보고 하사관 지원 할 생각 없냐고
하셨는데 아버지는 마음은 너무 하고 싶으셨지만 할머니 혼자서 농사 짓는것을
마음 아파 하셔서 체질에 맞는 군생활도 포기하고 제대 하시자 마자 다시 농사일을
시작 하셨답니다. 아버지 30대 사진 보면 피골이 상접하신게 고생이 짐작이 되더라구요 ㅜ
빠따는 기본이였던 시절...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학교에서 총검술도 가르쳤고 매일 아침마다 이사장 온다고 사열도 하고 그랬었죠
돈 밝히고 애들 줘패던 양아치 선생들 지금은 광화문 보수집회에 나올듯.
나머지 절반은 급훈......
급훈이 力 ㅎㄷㄷㄷㄷㄷ
급훈이 적중 ㅎㄷㄷㄷㄷㄷ
급훈이 이겨야 산다 ㅎㄷㄷㄷㄷㄷ
침투요원 양성의 산실 고등학교인줄......ㅎㄷㄷ
빠따는 기본이였던 시절...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학교에서 총검술도 가르쳤고 매일 아침마다 이사장 온다고 사열도 하고 그랬었죠
돈 밝히고 애들 줘패던 양아치 선생들 지금은 광화문 보수집회에 나올듯.
많은 선배학생들중 안경 쓴 선배님이 이겨야 산다 반에 딱 한분입니다.
지금학생들은 체력도 체력이지만 시력도 참 많이 안좋아 지는 것 같습니다
교련검열 ~~
전투화신고 링차고 교련검열 받던생각이 ~~
저 칼차고 준비를 한달 내내 ~~~
중대장 이상 칼 찼던 기억이
21세 때 군대 가셔서 훈련소 조교로 복무하셨는데 농사 일 하시다가 군대에 오니
온갖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시면서도 농사 일보다는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셨답니다.
나중에 군 간부가 아버지 군생활 잘 하시는거 보고 하사관 지원 할 생각 없냐고
하셨는데 아버지는 마음은 너무 하고 싶으셨지만 할머니 혼자서 농사 짓는것을
마음 아파 하셔서 체질에 맞는 군생활도 포기하고 제대 하시자 마자 다시 농사일을
시작 하셨답니다. 아버지 30대 사진 보면 피골이 상접하신게 고생이 짐작이 되더라구요 ㅜ
레알 약육강식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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