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사이야기 첫번 째는 병자호란으로 정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조선시대 최악의 전쟁을 임진왜란으로 알고 있죠.
그래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높구요.
뭐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병자호란을 더 큰 국치로 생각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 장군 덕분에 왜놈들을 이겨서
비록 국토는 유린당했지만 당당하게 승리했다는 자부심이라도 있지요.
병자호란 때는.. 정말...
아.. 이거 첨부터 열받으면 안되는데..
자, 생각해 보세요.
임진왜란 때는 태평성세가 200년간 지속되다 보니 매너리즘으로 인해
얼떨결에 당했다고 살짝 이해를 한다 쳐요.
(조선건국이 1392년이고 임진왜란이 1592년이니 딱 200년만의 전쟁이죠)
그런데.. 병자호란은요..
일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7년)으로 혹독하게 당했고,
또 1627년에 정묘호란으로 후금으로부터 당했는데도 대비를 못하고 9년 후에 다시
청(후금->청)으로부터 침략을 당합니다.
임진왜란 때는 매국노같은 김성일의 거짓정보(일본은 침략계획 없다는)로 인해서
율곡 이이의 10만양병설이 나가리 됐다고 쳐요.
그런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그렇게 당했으면 소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쳤어야죠.
선조도 참 능력없는 왕이었지만, 인조도 참 만만치가 않습니다.
광해군은 그래도 꺼져가는 명과 떠오르는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실리정책을 폈지만,
인조 이양반은 쿠데타를 일으켜 광해를 쫓아내고 왕이 됐으면
뭔가 좀 더 나은 정책을 폈어야지.. 바보 멍충이 똥개~
하긴, 그놈의 쿠데타로 인해 후금이 쳐들어 온 명분이 되긴 했지만..
아이구 꼬시다. 쩝~
임진왜란(정유재란 포함)은 거의 6~7년에 걸쳐서 싸운 장기간의 전쟁이어서
국토와 백성들이 무쟈게 피폐해졌으니 조선시대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되는건 맞는데,
그래도 판정승에 가깝죠.
하지만 병자호란은 1636년 12월에 시작해서 1637년 1월에 끝난 전쟁.
꼴랑 한두달만에... 말 그대로 1회에 KO패 당한 전쟁이었습니다.
전쟁 기간은 50일이긴 했는데.. 실제로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습니다.
거의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운 전쟁이었죠.
전국의 근왕군(관군+민군+의병 포함) 4만여명이 남한산성으로 오다가
청나라 300여명에게 대패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건 뭐 이순신이 12척으로 왜군함 300척을 물리친 것보다 더 큰(수치스러운) 전과입니다.
암튼 12만 청나라 군대에 질려서..
조선의 군대는 여기저기서 찔끔 승리하긴 했지만, 대부분 패전...
왕이란 인간은 먼저간 세자 가족들 따라 강화도로 도망가려다
청군대에 막혀 남한산성으로 쫓겨가서는..
그 때부턴 정말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도 못하고...
성 안에서 '싸우자'와 '화해(실은 항복)하자' 두파로 나뉘어 말쌈이나 하다가..
추위와 식량으로 인해.. 결국 한달만에 항복을 하게 되죠.
왕이란 자가 잠실 옆 삼전동에서 3배9고두란 치욕스런 항복식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이냐구요.(삼전도비는 저도 자주 봅니다. ㅆㅂ~)
게다가 이 전까지는 그래도 명나라의 속국이라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형제의 나라에 가까운 형태였는데,
병자호란의 패배로 인해 청나라의 진정한(?) 속국이 되었으니.. 오호~ 통재라~
경술국치에 버금가는 치욕이 아니고 뭐겠어요.
청나라 태종이 삼전동(-> 실제로는 잠실나루)에서 인조에게 받아낸 각서(?)는 무려 11가지나 되는데
그 조약의 내용을 보면..
신하의 나라가 되라는 둥, 왕가와 대신의 자식들을 청에 볼모로 보내라는 둥
명나라와 싸울 때 원군을 보내라는 둥.. 한마디로 완전 노예의 나라가 되라는겁니다.
쿠테타 일으켜서 광해군 쫓아내고 왕이 되더니만.. 아주 자알~한다.
니똥 굵다...
이.. 치욕스러운 노예국의 행태는 청나라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할 때까지
260년 가까이 지속됩니다.
그래봤자 곧 바로 그 나라가 청에서 일본으로 바뀐거라 별 의미는 없지만...
암튼..
이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에 끌려간 조선 백성들의 수가 자그마치 50만명이나 됩니다.
당시 조선의 인구수가 대략 3~4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1/10이 넘는 백성들이 청나라로 끌려간겁니다.
이후에.. 청으로 끌려간 백성들은 돈을 내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는데,
그 몸값이 적게는 2~30냥부터 양반가 자식들은 천냥이 넘는 몸값을 냈다고 하네요.
여기서 또 하나의 아픈 역사가 만들어집니다.
서대문구 홍제동에 가면 홍제천이라고 있습니다.
북한산 등산으로 하고 내려오면 홍제천 쪽으로 내려올 수 있는데,
근처 닭볶음탕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아..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
당시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으로 끌려간 백성들 중에는 여자들이 훨씬 더 많았는데,
그 중에는 처녀가 아닌 유부녀들도 꽤 많았습니다.
(평양지역에 사는 여자들이 훨씬 더 이뻤다는 기록이 있는걸로 보아
남남북녀라는 말이 괜히 나온건 아닌가 봅니다. -.-;;)
그런데... 그렇게 몸값을 치루고 고향, 아니 고국으로 환향을 했건만...
가족들이나 남편들이 반겨주지 않았다는 슬픈 현실...
유교사상이 기반인 조선이다 보니...
청나라에 가서 정절을 잃은 와이프와 딸자식들을 고운 눈으로 봐 줄리가 없었죠.
그래서 능력없는 인조는 이렇게 방을 써 붙였답니다.
"홍제천에 몸을 씻은 여인들은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해준다." 라고...
(홍제천은.. 바로 옆에 청나라 사신들이 묵는 홍제원이 있어서 홍제천이라고 했음.)
하여.. 많은 아녀자들이 홍제천에 모여들어 목욕재계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적이고 고집불통인 유교사상의 남편과 아버지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결국 집에도 못들어가고.. 홍제천 근처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왕의 은총을 입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홍은동"으로 되었답니다.
그리고 일부 집안으로 받아들인 남편들도...
청나라에 갔다 온 조강지처에게 정이 안갔는지 첩을 들여서
조강지처는 서러움에 밤새 눈물을 흘렸다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보통 쓰는 바람피우는 여자란 의미의 '화냥년'이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된겁니다. 환향녀 -> 화냥년
아무리 못배운 옛날 어르신들이 쓰는 비속어라고 할지라도
우리 조상들의 아픔과 설움이 서려있는 말인데...
그걸 그렇게 함부로 쓰면... 안될터인데... 쩝~
글이 길어지면 안읽으므로 짧게 여기까지만.. ^^
다음에 또 만나요~ ㅎㅎㅎ
매우 감사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아픔과 설움이 서려있는 말인데...
그걸 그렇게 함부로 쓰면... 안될터인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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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히 동감하는 문장이네유
나당연합으로 만주벌판을 잃게 된 사실이며
역사상 최초의 외세와의 야합인 나당연합을 혐오합니다.
환향녀의 경우는 고려 시대 때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저도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
홍은동의 유래도 처음으로 알게 되고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
그래도.. 조선 세종 때 김종서 장군이 지금의 지도만큼(두만강까지) 회복은 했으니..
그걸로 조금 위안을 삼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ㅎ
그리고 환향녀는 조선 병자호란 때가 맞아요. ^^
지금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처럼 제법 좋았습니다.
비록 속국이기는 하지만 조공도 그렇게 무리한 수준이 아니었고,
명나라 왕조도 제법 멍청해서 우리가 조공만 제때 바치면 안건들고
임진왜란 때처럼 군사도 지원해주고.. 암튼 그랬죠.
하지만 병자호란 이후 후금에서 청나라로 바뀐 이후에는....
그 약탈과 조공이 병자호란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악랄해졌죠.
그걸 비교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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