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맨날 눈팅만 하던 41세 아재입니다.
여기서 여론 형성된게 공중파에나오면 희열을 느껴 히딩크 어퍼를 해되는 보배팬입니다.
이야기 시작 하겠습니다.
2년 반전쯤 당시 14살이던 제 아들이 혈구탐식성림프조직구증(HLH)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열이 자주 나기에 동네에서(경남거제 옥포)쫌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갑자기 선생님이 소견서를 써줄테니 오늘 바로3차 진료기관에 가라고 하시더군요.
어안이 벙벙 햇죠.일단 온통 영어로만 된 소견서를 받아서 나왔습니다.
소견서를 번역기로 검색해보니 "백혈병의심"이 보이더군요.
잘못 검색한줄 알고 번역기가 미쳣나.하고 다른 번역 검색기로도 검색을 해봣어요.하지만 같은 결과.믿을수 없어서.아닐거야.아닐거야.의심이니 아닐거야.아니길 바라며
바로 가까운 진주에 경상대 병원을 갔죠.근데 당시 병원서 데모도 하고 간호사들 손발도 안맞고.계속 상태가 안좋은데 의사는 여기서 마지막까지 치료를 하긴할거냐고 묻고.더욱더 애는 힘들어만 하고.이건아니다 싶어서 담날 아침 퇴원수속(웃긴건 퇴원수속 다했는데 골수 검사실서 애기 골수검사하러 데리러 왔더군요.--)하고 백혈병 제일 잘본다는 서울 성모 병원으로 바로 출발했습니다,올라가는 도중 이때부터 두려움이 시작된거 같아요.경상대 병원에서도 백혈병이나 HLH가 의심된다고 했으니까요.올라가는 내내 눈물이 흐르고 아닐거야 아닐거야 아닐거야.하나님께 제가 잘못했으니 제발 오진이라 해주세요.제발 이러지 마세요.이러면서 올라갔죠.올라가는 내내 우리아들 힘들어하면서 잠만 잘라고 하는데
너무 깊이자면 다시 깨지 못할까 두려워 계속 말걸고 깨우고 갔던 기억이 나네요.
진짜 서울은 차가 너무 많더군요.저같은 촌놈은 다른건 몰라도 차 맥히는거 땜에 못살아요.
아침 출발했는데 서초에있는 서울 성모병원앞에 다와서도 한시간 가까이 더 걸리더군요.밤에 도착해 일단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정말 딱 봐도 위독해 보이는 환자분들.그리고 임종하셔서 나가시는분도 첫날 가자마자 봤어요.충격이었죠.
그리고 이틀을 응급실에서 보냈습니다.이때부터 제가 울보가 됐어요.애 앞에서만 꾹 참고 고개만 돌리면 저도 모르게 줄줄줄 흘러 내리더군요.
20층 소아병동에 자리가 났다고 하여 겨우 올라가서 1.5평 정도 되는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이틀동안 응급실에서 너무 힘들어서 옆침대와 커튼하나 쳐져있는 침대가 있고 티비가 있는 병실에 올라온 것만 해도 둘이 부둥켜 안고 좋아했죠.
고통의 시작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날 저녘부터 아이가 호흡곤란이오고 장기가 비대해지고 각종 수치들이 엉망이 되고.말그래로 고비가 왔어요.이 병의 특성중 하나입니다.다행히 각 과 교수님들이 새볔까지 돌아 가시며 오시더군요.일단 고비를 넘겼죠.
간호사님들이 저보고 잠시 나가있으라 해서 휴게실에 앉았는데 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흐르더라고요.제가 당시 키176에 105키로였는데 10키로가 순식간에 빠졌는데 눈물로 빠진게 아닌가 싶어요.한참을 휴게실서 어이야 하고 우는데
옆에 이십대 후반대로 보이는 젊은 아빠가 저에게 이러더군요
아버님 지금 울 때가 아닙니다.
내일부터 크게 세번 더 우셔야하는데 마음 다 잡으시구 단단히 먹으라구요.
그래서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첫번째 아이 머리 깍을 때 우실 겁니다. 그리고 두번째 골수검사 할 때 크게 우실겁니다.
그리고 항암치료 처음 할 때 또 우실겁니다.
그 젊은 아빠의 말은 100% 사실이었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서 일단 머리카락을 깍으라더군요. 눈물이 안날 수가 없죠ㅠ.영화에서만 보던 아픈 아이들 삭발을 내새끼가 하다니.그때부턴 매일매일이 꿈이길 바랬죠.군대 있을때 처럼.자고 일어나면 아무일 없듯 내방에서 깨는 꿈..
저도 그때 머리를 짧게 깍았습니다.
그 당시 사진에 우리 둘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습니다.뒤에 우리아들이 이야기 해주더군요 머리깍을때 아빠 또 울까봐 꾹 참고 웃었다고.돌아서서 우는거 다 봤다고.....
그리고 다다음날 골수검사실에 들어갔죠
이거는 참. 어떻게 설명하죠ㅠㅠ제 누추한 글솜씨로는 표현이 어려워요.자식 있는 여러분.
내 자식이 길가다 살짝 넘어지기만 해도, 손 조금 무릎 조금만 까져도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죠?근데 커다란 쇠바늘이 내새끼 몸 속 뼈를 뚫고 들어가고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손만 잡아 줄 수 밖에 없을 때.... 무어라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그냥 그날 저녁 제 왼쪽 가슴에 벌겋게 멍이 들 정도로 제 가슴을 치고 또 치며 엉엉 울었던 기억밖에 없네요.
1~2번 골수 검사 후 결국 HLH로 진단을 받고 얼마 후 항암치료에 들어갔습니다.
너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항암제가 어린 내 새끼 몸안에 들어간다니. 또 잘못되면 어떡하나 무서웠죠. 그때 제가 두려움을 이겨 낼려고 생각해낸게 그래, 나도 같이 가면 되. 하늘 나라든 지옥이든 내새끼가 어딜가든 내가 따라가서 우리아들 지켜주면 되. 잘못되면 같이 죽으려 생각하고 그때 부턴 울음을 참고 참고 목이 메이고 메이다 목에 경련이 오고 마비가와도 아이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노려했죠.여러분.욕하진 마시고 그때부턴 정말 맘이 조금 낳아졌어요.유치하게 들리시겠지만 아들 잘못되면 나도 그순간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내새끼 내가 엎고 하늘 나라 같이 가야지 라고 생각 했어요...(당시 병원 옥상으로 못올라가는 구조고 8층쯤에 야외 테라스가 있었는데 거기서 뛰어내리면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후 열번 정도 항암을 더 받으니 통원치료로 받으라고 하더군요.
아직 수치가 너무 안좋은데도.
큰병원은 정말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응급실에 너무 많이 대기하고 있어서 조금 호전되면 바로 퇴원조치를 하더군요.
그 당시 저희 집이 거제도였는데 할 수 없이 서울에 원룸을 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근데 진짜 사진보고 간 원룸들... 진짜 쓰레기 같은 인간들,
아이가 아파서 시간도 별로 없고 이런 저런 사정이야기 하고 사진에 있는 원룸 없으면 없다 이야기 해달라해도 꼭 있다고 오라고 하더군요.가보면 또 금방 팔렸다고.다른집 보여준다고 죙일 뺑뺑 차에 싣고 다니고..ㅜㅜ
중고차도 마찬가지 였어요. 아이를 눕혀서 편하게 통원치료 다녀야하기 때문에 (항암치료 후 구토가 너무 심해요) 승합차 가성비 좋은 차 구하려 많이 다녔는데 제 사정이야기 하고 해도 결국 가보면 허위매물이 많았죠.
저도 사실 한 성격해서 싸울 수도 있었는데 제가 화난다고 싸우면 나쁜 기운이 제 아들에게 미칠까봐 화도 못내고 싸우지도 않고 참고 그냥 돌아섰었죠.
결국 병원에서 한시간 반거리에 친동생이 사는 당진으로 투룸을 구했습니다.
진짜 그분들 감사드립니다.(갑자기?ㅠㅠ)
사정이야기 하니 단기로 3달씩 계약을 해주시더군요.
이런 일도 있었죠.
그렇게 입퇴원을 반복하다 집사람이 가슴통증을 호소해 집 근처 당*종합병원으로 가 진료를 받았죠.
근데 검사수치가 안좋다며 당장 큰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또 놀라 (1시간30분거리)단국대 병원으로 급히 갔죠.
가는 내내 당진집에 있는 아들과 통화하면서요, 전날 아들이 항암치료받고 온날이었거든요.
집사람 접수하고 검사하는 사이 다시 나와 아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때부터 연락이 안되는거에요.
30분 넘게 연락이 안되서 어떡하나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당진 기지시 지구대에 연락해서 사정이야기를 하고 아이를 부탁했어요. 다행히 자고 있었죠.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릅니다ㅠㅠ
다행히 집사람은 아무 이상 없다고 진단받았습니다. 당시 당*종합병원이 오진 많았다는 소문이 있긴있었죠.다행히 이번엔 오진.우리 아들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구 생각 하며 당진으로 돌아왔죠.
그 후 우리 아들은 스물다섯번의 항암치료에도 차도가 없어서 2018년 11월 27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요즘은 조혈모세포이식이라고 하는 골수이식을 했습니다.
골수이식 전처리 과정이나 후에 오는 숙주반응 또 소아병동의 생활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지금은 그때를 잊고 싶지만 혹시 궁금해하시면 다시 올릴게요.
사실 이글 쓰는중에도 몇번 울컥했네요.
현재 우리아들은 골수이식한 지 2년 조금 넘어서 학교도 다시 가고 한달에 한번 꼴로 서울성모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신확인이라는 스타트업을 시작했습니다.
중고차, 원룸, 중고나라제품, 집에 혼자 있는 아이&노인 긴급 확인등 전국에 있는 우리 지사의 라이더님들이 구매자 대신 영상통화로 제품 사실여부 확인시켜주고 택배도 우리가 직접보내주는 서비스입니다.
네이버에 허위매물조사단이나 직거래 대신맨을 쳐 보시면 됩니다.(이 부분이 문제 된다면 바로 삭제 할게요)
여러분들, 아시다 시피 건강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아프면 그냥 서울 5대병원으로 가세요. 일이 중요합니까?
왜 이런 이야기를 드리냐면 다른 분들 직장문제로 가까운 지방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하늘나라 간 경우를 여러번 봤기 때문입니다.
지방병원을 폄하하는게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서울 큰병원(우리는 5대병원이라 했었는데 요즘은 약간 4대병원으로 가는 느낌)은 의료기술이나 시설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 왜이리 우냐고 하실 것 같아서.
아이 앞에선 최대한 담담한 척 했고 걍 돌아서면 눈물이 났습니다.
물론 아이앞에서 운 적 도 있지만 이게 부모마음이 아이가 아프면 내탓이 되요.
내가 잘못먹여서, 내가 잘못해서 아이가 아픈 것 같아서 죄책감까지 들죠.
저 뿐아니라 20층 병동 부모님들 다들 그러시더군요. 아이가 아픈게 내 탓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구요.
지금은 진짜 매사에 감사하고 살아요.
현재 큰 병 진단 초기여서 병원 설정을 잘 못하시는 단계시면 연락 주세요.2년 넘게 병원 생활하면서 특출나게 한분야에 잘 보시는 분들과 병원 공부 좀 했어.코로나 조심하삼~
아빠님덜 힘내자유 하이팅
이글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쭈르륵............아~~~~~사무실에서 이러면 안되는데..........
여튼 힘내시고 이제부터 행복 시작입니다!
그래도 아들이 나았다니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화이팅하세요!!!!
저도 엄마가 병원에서 의뢰서 받으신거 다 영어로 되어있길래 왜 큰병원가래?이러며 아무 생각없이 번역기 돌렸더니 혈액암의심 ㅠㅠ심장이 내려앉고 손발이 덜덜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 연세에 골수검사 받으실땐 눈에 핏줄이 터질정도로 울었었지요ㅠ
4년 지난 지금 치료 잘받고 아주 잘계세요
아드님 다 나으셨다니 정말 너무 축하드려요 앞으로 행운만 있으실겁니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