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0603
보배드림 선배님들,
지난 주 5월27일에 올려야 매주 목요일마다 올리는 글이 되는데, 컴퓨터 사정상 못 올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요일보다는 오늘 목요일에 지난주 글과 함께 연속으로 2개의 글을 올립니다.
20210527
단군할아버님!
오늘도 현대를 살아가는 저희 후손들이 조금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부화지국?火之國 2
러일전쟁
1903년 8월에 시작한 러시아와 일본간 협상(만주는 러시아가, 한반도는 일본이 차지하자는 일본의 제안에, 한반도 39도선 위는 러시아, 아래는 일본이 통치하자는 러시아의 제안이 나오면서)이 결렬되었다. 이 후 ‘러시아가 향후 이익을 위해 전쟁을 선택할 수 있다’고 일본이 판단하여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1904년 2월 8일부터 1905년 가을까지 있었던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무력 충돌인 러일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의 주 무대는 만주 남부인 요동반도와 한반도 근해였다.
(라는 설명을 인용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때 인심이 좋아서, 만주 남부와 요동반도를 전장戰場으로 빌려 준 것도 아니고, 또한 대한해협을 포함한 동해를 러일해전의 전투장으로 빌려 준 것도 아닌데…. 후세들이나 속 모르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오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양측전력은,
러시아대 일본이 50~100만명(제1 태평양함대 & 제2태평양함대)대 30만~50만명(일본 연합함대).
전쟁결과는,
러시아 34000~52600여명 전사 또는 부상으로 사망, 9300~18800여명 질병으로 사망. 146000여명 부상, 74000여명 포로.
일본 47000~47400전사 11500여명 부상으로 사망 22000~27000여명 질병으로 사망.
러일전쟁에는 압록강 전투, 뤼순 공방전, 황해 해전, 봉천 전투 등등이 있었는데, 막바지에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를 결정한 전투가 쓰시마 해전이므로 이에 대한 설명을 더해봅니다.
해전에서 양국 병력은,
러시아대 일본이, ‘전함8척, 순양함8척 구축함9척 기타 포함 27척’ 대, ‘전함4척, 순양함 27척, 구축함 21척 기타 포함 89척’
전투결과는,
피해 규모 러시아대 일본이, ‘4380명 전사, 5917명 부상, 21척 격침, 7척 나포, 6척 무장해제’ 대 ‘111명 전사, 583명 부상, 어뢰정 3척 격침’.
진형정비를 마친 일본 함대의 집중포화로 초반에 러시아 함대를 강타하여 대승했고, 그 결과 포츠머스 조약에서 러시아는 전쟁의 배상금 등을 무는 상황은 피했지만, 동북아시이에서의 이권을 상당부분 일본에게 양보해야 했으며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하려는 것에 묵인하게 됩니다.
쓰시마 해전 전투 준비와 양상을 언급하자면,
러시아: 분리되어 있는 러시아 함대가 합해지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해전. 장거리 항해 중, 여독도 풀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
일본: 병법상 ‘집중’전략으로 함대들이 연합되어 있었음. 기존의 흑색화약 대신 성능이 우수한 새로운 ‘시모세 화약’과 정밀한 신관(이주인 신관)을 사용. 무선전신기술을 이용해 발트함대 발견시 본국과 소통하며 작전 실행.
도고 헤이하치로의 지휘 중 5월 27일 14:05분에 “종전좌현 70도(Corpen PORT 070: 각도70의 급회전)”지시가 꽤 효과적이었던 점.
무엇보다도,
일본은 전장인 해협을 세밀히 파악한 후, 지나가는 발틱함대를 최대한 ‘공격하여 궤멸’시키는 것이 목표였던 반면,
발틱함대는 전투장인 해협 파악도 제대로 안한 상태로, 약간의 피해는 감수하더라도 블라디보스톡을 향해 대한해협을
‘통과’
하려는 것이 목표였다는 것!!
}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