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글들을 모두 지워 짧게 한 페이지로 작성해보았습니다.
다들 즐퇴하세요!
Prologue
1. 나는 외딴섬에 투입되었다.
그곳은 의사라곤 나밖에 없는 무의촌이었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초보 의사에겐 지옥과 같은 전쟁터였다. 또한, 도시에서만 살았던 내게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감옥이었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철창살은 내면마저 침전(沈澱)시켜 지하 깊숙한 곳으로 보내 버렸다.
들어간 첫날. 적응할 새도 없이 몰려드는 환자들을 보다 보니 근무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첫날 근무 치고 나쁘지는 않았다. 무리한 부탁을 하는 환자들이 있었지만 문제없이 잘 넘어갔다.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는 당직 근무를 해야 했다. 섬사람들의 응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이따금 걸려오는 환자들의 전화를 받고 처방하기를 반복하며 잠이 들었다가 이윽고 아침 근무를 시작했다.
2. 응급 환자
응급 환자들은 다양했다. 내 손톱 밑 가시가 제일 아픈 만큼 경증 환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나는 섬의 유일한 의사였기 때문이다.
가끔 위험한 환자들도 있었다. 심근경색, 뇌출혈의심, 대동맥 박리 의심환자 등 중증 환자들이 들이 닥치면 식도에서부터 땀이 나 기침이 나왔다. 나는 1차적인 조치를 시행한 후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 닥터헬기를 요청했다. 그들과 조율하는 사이 환자가 나빠지지 않게 간호사에게 지시하며 그들의 생체 징후를 살폈다.
그렇게 그들이 헬기를 타고 날아가면 나는 그 헬기가 잘 날아가는지 끝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쉴 새 없이 모래가 눈 속으로 들어 왔지만 왠지 제대로 비행하는 헬기의 모습을 봐야만 안심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1년간 30여명의 환자를 헬기로 보내며 그들이 다시 걸어서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3. 유일한 해소법
섬 생활이 계속 될수록 답답함은 심해졌다. 특히 거친 섬사람들을 대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사명감만으로 24시간을 인내하던 나도 거친 사람들의 행동에 점차 변하고 있었다. 어려운 환자들을 만나고 나면 내면의 철창살이 두 배로 두꺼워져 심장까지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이어폰을 끼고 보건소를 나섰다.
섬바람은 차가웠다. 그 차가운 바람은 차디찬 바닷물까지 품고 있어 볼을 때릴 때마다 아팠다. 그럼에도 나는 답답할 때마다 보건소를 나와서 섬바람을 맞았다.
입에 바람을 집어넣고 기도까지 내려 보내면 차가운 공기에 자극이 되어 기침이 나왔다. 진료실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기침으로 토해내려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진료실 속 오묘하고 미지근한 공기로 가득한 가슴을 차가운 섬바람 공기로 바꾸고 나면 답답한 것이 한결 나아졌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4. 성숙해지는 방법
몇 년 전 혼자 섬으로 들어와 사역중인 노목사님은 나를 바꾸어주신 한 사람이었다.
가끔 목사님도 진료실에 오셨다. 70세 노목사는 항상 말쑥한 모습으로 다녔다. 나이가 한참 어린 내게 매번 존댓말로 본인의 증상을 또박또박 얘기하셨고 그런 목사님을 보며 닮고 싶다고 생각 했다. 그분은 어딜 가나 선행을 베풀었고 그래서 마을 사람 모두가 목사님을 좋아했다. 예수가 이 땅에 왔다면 그분을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같은 봉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분을 보며 많은 뉘우침을 얻었다. 봉사를 통해 주위에 선을 전하는 목사님은 아주 행복해보였다. 반면 스스로를 철창살에 가두고 끊임없이 자가 침전(沈澱)하는 나는 봉사를 할수록 불행해졌다. 그 불행은 다시 나의 입을 통해 환자에게 전해지고 불행의 전파라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그래서 악순환의 근원인 철창살을 깨부수기로 했다.
5.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 화상 입은 아기
오후 8시쯤 2세 아기가 할머니에 업혀 들어 왔다. 뒤로는 한쪽 다리를 절룩이는 할아버지와 7세쯤 돼 보이는 아이가 따라 오고 있었다. 아기는 2세 임에도 제대로 걷지 못했고 겉보기에도 또래에 비해 발육이 떨어져 보였다.
할머니가 아기를 목욕시키는 사이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와 전신에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아기는 팔다리와 얼굴에 하얀 수포가 광범위하게 올라와 있었고 통증이 심한지 내내 울고 있었다.
해경정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사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온 7세 아이는 본인의 첫째 손자인데 두 아이는 이복형제이며 두 엄마 모두 도망갔다고 했다. 2세 아기는 집에 혼자 방치돼 죽어 가는걸 발견하고 섬으로 데리고 왔으며 한쪽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는 몇 십 년 전 뇌경색으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버거워 보이는 그녀의 삶이 그녀의 눈물에서 느껴졌다. 본인은 죽어야지라고 말하면서도 가엾은 아이들이 굶어 죽을까봐 매일을 버틴다고 말하는 할머니였다.
도착한 해경정은 할머니와 아기만 데려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예전의 나라면 별 신경 쓰지도 않았을 남의 인생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부탁했다. 필요하다면 의사인 내가 동행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해경에서는 그들 모두 육지까지 실어다 주기로 했다. 아파서 울던 아기는 할머니 품에 안겨 자고 있었고 7세 아이는 어딘가 떠난다며 즐겁게 여기저리를 뛰어 다니고 있었다. 그 모든 걸 주변인으로 구경할 수밖에 없는 내가 미안했다.
잠시 인계를 하는 사이 할머니는 선착장 매점에서 포카리스웨트를 사와서 내밀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에요 선생님” “이 불쌍한 것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었고 할머니 가족은 해경과 어두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시끄러웠던 아이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섬은 고요해졌고 어둑한 선착장엔 빛바랜 할로겐 등 불빛만이 떨어졌다. 무거운 불빛이 내 머리로도 쏟아졌다. 멍해졌다. 원래라면 절대 걷지 않았을 그 먼 거리를 추적추적 걸으며 관사로 돌아왔다.
6. 섬을 떠나는 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섬의 유일한 의사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프다는 환자들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새벽이고 밤이고 주사를 놔주고 약을 처방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이전보다 마음은 더 풍요로워졌다. 그러자 긍정적인 마음은 내 입을 타고 환자들에게 전해져 행복의 선순환이 되고 있었다.
섬을 나갈 시기가 되었고 시원섭섭한 마음을 안고 마지막 진료를 하게 되었다. 나를 좋아해주던 많은 사람들은 내게 떠나지 말고 1년 더 근무하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음에도 척수 반사가 시키는 대로 “네 저도 그러고 싶네요.”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1년이 훌쩍 지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였길 바랐다. 그렇게 나는 들어온 적 없는 것처럼 조용히 배를 타고 섬을 떠났다. 안녕.
7. 다시 만난 교회
섬에서 치열하게 살던 내가 다시 대학병원으로 들어와 바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병원 안에는 교회가 있는데 밤에 옆 건물로 넘어갈 때마다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행복하게 살 때는 생각도 나지 않던 신이란 존재에게 절박하고 힘들 때는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의지하게 된다. 나를 괘씸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결국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으며 울게 된다. 가끔 절박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신이라는 존재가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아는 제 역할을 하는 두 번째 교회. 그 중 하나는 내가 있었던 섬의 교회였고 목사님이 생각났다. 맞다. 잊고 지내고 있었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나는 절박한 환자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인건 동일했다. 그 사명감을 잊지 말라고 내가 가장 많이 다니는 길목에 교회가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목사님이 떠올랐고 나는 마음가짐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렇다. 선순환을 만드는 초보 의사가 항상 되어야겠다고.
명백한 배스트 오브
배스트 상인데
4년 전 겨울 기억나네여~
연재해 주신 글 덕분에 긴긴 겨울밤 이불 속에서
다음 화 기다리는 재미로 지냈었죠. 반가워여 ^^
벌써 4년이 되었습니다ㅎㅎ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그리운 님의 글을 다시 만나게 해주셔서요.
단 하나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모두 읽은 전 운이 좋은 사람 이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께서 저와 그 행운 나눌수 있길 바랍니다.
글도 많이 수정하여 좀 더 읽기 쉬운 버전으로 바뀌어 이전글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더 재밌게 읽으실수 있을거 같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의사쌤 늘 건승하시길 희망합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좋은일 가득하세요
선생님만 댓글 보신거 아니고 우리들도 함께 봤거든요.
JDC님 생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겐 은인과 같은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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