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톡, 톡,톡,톡….” 우려낸 국물에 야채만 넣고 한소끔 더 끓여주면 연포탕이 완성된다.
신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연포탕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뭔가 우울해진다.
뭘까?
TV를 보며 웃고있는 성환의 모습을 보니 더 화가난다.
연후는 화를 주체 할수가 없다.
예전이라면 이유따위 상관없이 크게 싸웠을 테지만, 인내심이 늘어서 참을줄도 안다.
씽크대에 숟가락을 던져버리고, 완성된 연포탕을 기분 나쁘다는듯 성환앞에 던지고는 침대로 간다.
“왜그래? 뭐때문에 그래?”
성환은 이유를 잘 알지만, 그래도 조심히 물어본다.
“먹어! 먹으라고!” 소리치고는 이불을 둘러쓰고 돌아눕는다.
예전이라면 한바탕 소리지르고 싸운다음 두어달 짐승보듯 할 일이지만, 침대로 가서 눕는다는건, 참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할 일인지, 울어야 할 일인지 혼란스럽다.
성환이 연포탕을 삼킨다.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연포탕이 느릿느릿 속을태우며 내려간다.
성환과 연후는 이십년을 함께 살았지만, 성격은 완벽하게 극과극의 차이가 난다.
나다니기 좋아하는 성환과, 움직이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연후가 함께하는 이유라면, 사랑 말고는 설명하기 힘들게다.
평범한 일요일 아침이다.
일곱시쯤 일어나 샤워를 마친 성환이 연후가 일어나길 기다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해진다. ‘지금 출발하면 차 안막히고 올림픽대로 벗어날수 있을텐데….’
생각하니 못견디고 연후를 깨운다. “놀러가자. 드라이브 하고 맛있는거 먹고오자.”
“싫어! 싫다고!
휴일은 좀 쉬자!”
앙칼진 목소리로 시작하는걸 보니, 쉽지 않을듯 하다.
성환 혼자서 나가도 될듯 하지만, 연후가 극도로 싫어한다.
회사에서 회식이 있으면 시간마다 영상통화를 하며, 몇분후에 나올건지 다짐을 받는다.
그러다 일분이라도 늦어지면 인연을 끊겠다고 소리지른다.
오래전, 일박코스로 낚시를 갔을때다. 하루 떨어질 뿐인데, 영상통화를 몇번이나 한다.
“저기, 누구야?”
“응, 저분은 용수형님.”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영상통화로 동료들과 인사하고 전화를 끊으면, 일시에 같은소리가 들린다.
“병신새끼!”
그날 이후로 성환은 혼자 가야하는 낚시며 등산을 포기하고 살고있고, 연후는 그런 성환을 보고, 자기가 좋아서 낚시며 등산을 안간다고 생각한다.
열시가 넘을쯤 연후가 일어난다.
“알았어. 알았다고!
준비할께 보채지마 좀!”
성환은 몹시 조심스럽다. 잘못해서 연후가 화를내면 큰일이다.
“알았어. 천천히 해. 놀러가는데 급할거 있나?”
말과 다르게 속은 불이 붙었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있지만, 온 신경이 시간 숫자에 집중되 있다.
내일은 출근해야 하니, 좀 일찍 드라이브 갔다가 이른시간에 들어와서 맥주한잔 마시고, 열시 전후에 잠들면 월요일 피곤도 없을거라 생각 하지만, 결코 쉽지않은 목표다.
열두시가 넘을쯤 세수하고 화장품을 꺼낸다.
성환은 화가 나지만 참는중이다.
보채면 화낼듯하고, 뒷감당은 늘 벅차기만 하다.
오후 두시가 가까울쯤 화장을 마친 연후가 한마디 한다.
“이시간에 어딜 갈라그래? 차도 막힐텐데?”
성환은 폭발 할뻔한 감정을 겨우 누르고 답한다.
“응, 늦었으니, 강화도나 한바퀴 하고오자.
가서 노지국수 먹고올까?”
“싫어! 난 밥먹을거야!”
“그래, 해장국 맛집 가보자.”
차가 막혀서 힘들게 도착한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보니, 맛집이라 알려진 해장국집이 있어서 찾았다.
입구에서 연후는 인상이 굳어진다.
낡은 음식점에, 낡은 테이블에, 오래된 냄새까지 나는듯 하다.
그래도 맛집이라니, 해장국 두그릇을 주문한다. 성환은 모락모락 김나는 국물을 마셔본다.
맛있다.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며, 아침부터 억눌렀던 속앓이까지 보상되는듯 하다.
“오빠, 이거, 냄새안나?
고기에서 냄새가 나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난 괜찮은데? 맛있어.”
“아냐, 안먹어도 돼. 남겨도 괜찮아.”
“알았어. 먹어보고…”
한숟갈 먹을때마다, 냄새난다 이상하다 남기라고 반복한다.
이제 성환은 뭘 먹는지도 모르겠다.
짜증 한숟갈 들어서, 뜨거운 불덩어리를 삼킨다.
정말 한모금 한모금 삼킬때마다 불덩어리 같은 지독한 응어리가 떨어지듯 통증이 되어 아래로 떨어진다.
'제발좀 그만해라!
나 음식좀 먹자!'
라고 입술까지 나오는 말을 삼키며 악으로 밥을 삼킨다.
한마디 했다가는 또 심각한 싸움이 될테니, 참고 또 참느라 속에 모아놓은 불덩이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국물 한방울까지 다 먹어냈다.
성환은 뭘 먹은건지 알수가 없다.
속이 답답하다.
국물만 몇숟갈 마시고 한그릇 온전히 남긴 연후는 성환이 걱정된다.
“남겨도 된다니까 그걸 다 먹었네? 괜찮아?”
“응, 괜찮아.”
나오는 길도 막혀서 늦은데다, 마트를 들리느라 열시가 가까울쯤 집에 도착했다.
연포탕 내음이 소주를 부른다.
성환은 일부러 요리하는 연후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연후가 음식을 한다는건 싸우게 될 확률이 삼할은 넘을게다.
그나마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음식을 먹는다는건 화나고 짜증스럽고, 울분을 삼켜야 할 아주 위험한 일이다.
싱크대에 숟가락 던지는 소리가 들리고, 곧 불덩어리를 삼키게 될걸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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