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자동차 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이태리자동차협회(ANFIA)에 따르면 지난해 7월까지 115만2,744대에 달했던 내수 시장은 올해 같은 기간 92만3,739대로 19.8%나 감소했다. 그리스에서 촉발된 유럽 불황의 그늘이 스페인을 감염시킨 후 이태리마저 삼켰을 만큼 후폭풍이 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택시로 사용되는 쉐보레 캡티바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차는 선전했다. 피아트를 포함해 이태리 안에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 가운데 올해 7월까지 지난해 대비 성장을 기록한 곳은 쉐보레와 르노 산하의 다치아(Dacia), 현대차, 기아차, 랜드로버 5사 뿐이다. 그 중에서도 판매 성장률이 가장 높은 회사는 기아차로 지난해 대비 45.3% 증가했다. 랜드로버의 성장률 43%보다 높은 기록이다. 이외 쉐보레는 7.7%, 현대차는 4.9% 늘었다. 유럽 무대를 주름잡던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볼보, 알파로메오, 토요타, 포드, 혼다, 푸조, 르노 등 거의 모두가 내리막을 걸을 때 쉐보레를 포함한 한국차만 차분히 오르막을 경험한 셈이다.
이태리에서 호평받는 한국산 쉐보레 스파크
물론 숫자로 표현되는 절대 판매량은 여전히 피아트가 압도적이다. 피아트는 올해 7월까지 19만2,000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2만8,700대, 쉐보레는 2만2,000대, 기아차는 1만6,600대를 인도했다. 한국에서 생산되거나 한국 브랜드로 구분되는 3사 판매량 모두 합쳐도 6만7,000대에 머물 뿐이다. 하지만 피아트그룹(FGA) 전체 판매량이 20.5% 하락한 반면 한국차는 평균 19.3% 증가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현지에선 기본적으로 유럽 불황을 이유로 꼽되 피아트의 변신 부족도 함께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태리 소비자 변화 속도를 피아트가 맞추지 못했다는 것. 그나마 피아트 500이 등장해 기대감을 높였지만 신차 효과가 사라지면서 이제는 이태리 소비자마저 피아트를 외면할 정도까지 갔다는 게 현지 소비자들의 가시 돋친 비판이다. 가뜩이나 주머니가 가벼워진 점을 피아트가 간과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현대차 i20(앞)와 피아트 500이 나란히 충전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 위기가 지속되자 이태리에선 한 때 외면 받았던 LPG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효율은 휘발유 대비 낮지만 가격이 휘발유(ℓ당 평균 2,600원) 대비 절반(ℓ당 평균 1,060원)이어서 LPG차 구매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 이태리자동차협회의 연료별 신차 등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0월 9.5%로 정점을 찍었던 LPG차 등록비중은 매월 낮아지다 2011년 4월 2.5%로 바닥을 찍었다. 하지만 유럽 불황이 본격 시작된 지난해 11월 5%로 치솟았고, 올해 4월에는 10.3% 비중으로 과거 전성기를 훌쩍 넘겼다. 반면 같은 기간 휘발유차 비중은 38.4%에서 30.8%, 지난해 6월 56%를 점유했던 디젤차도 올해 7월에는 53.8%로 줄었다.
LPG차 판매가 늘어나자 최근 이태리 내 자동차업체 간 경쟁도 치열하다. 피아트를 비롯한 대부분 회사가 휘발유와 LPG 겸용 차종을 앞 다퉈 선보이면서 소비자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한국차도 예외는 아니어서 현대차 i20, 쉐보레 스파크 등이 LPG차로 인기가 높다.
LPG차 증가는 한국차에 호기가 아닐 수 없다. LPG 엔진 분야만 본다면 세계 최고라 할 만큼 기술력이 높아서다. 게다가 경쟁 차종보다 LPG차 평균 연료효율이 높다는 점도 분명 플러스 요인이다. LPG를 포함해 이른바 에코가스로 대비되는 가스 연료 차종이 늘어나는 독일 내에서도 한국 LPG 엔진 기술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이와 관련, 이태리에서 LPG차를 운전하는 파비오(62) 씨는 "이태리 정부의 지원에 따른 연료의 저렴한 가격, 그리고 유럽 불황이 LPG 사용량을 늘리고 있다"며 "이태리는 주유소와 LPG 충전소를 겸하는 곳이 많아 휘발유와 LPG를 동시에 사용하는 바이퓨얼 차가 많은 점도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예비타이어를 없앤 자리에 LPG 연료탱크를 위치해 차의 무게를 줄였다"며 "특정 계층, 그리고 특정 차종만 LPG를 적용하는 한국과 달리 이태리에선 누구나 LPG차를 구매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두 가지 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는 셈이다.
LPG는 0.749유로(한화 1,060원)에 판매된다.
이태리 LPG차 증가에 따라 쉐보레는 한국에서 생산된 LPG차 수출에 적극적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한국산 LPG차에 대한 이태리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며 "추가적인 LPG차 수출 확대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도 LPG 분야는 자신이 있는 만큼 유럽 수출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수출 확대의 기본 방침은 현지화"라며 "시장에 맞는 차종의 지속 투입을 통해 점유율을 늘리는 게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이태리 내수 불황이 LPG에 강한 한국차 호황을 부추기는 셈이다.
한편, 이태리 자동차 내수 시장의 그룹별 판매량에선 현대기아차그룹이 올해 7월까지 4만5,300대로 유일하게 전년 대비 판매량이 25.2% 증가했다. 반면 폭스바겐그룹은 18%, GM그룹은 쉐보레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오펠의 판매 저조로 23.3%, 르노그룹은 19.6%, 토요타그룹은 22.3%, BMW그룹은 14% 각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밀라노(이태리)=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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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도 예전엔 자국민을 봉으로 봤다
니들도 조심해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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