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농익은 내공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 벤츠 GLE 450

-안락한 승차감에 초점 맞춘 벤츠식 대형 SUV
-편의 및 안전품목 구성 누락은 다소 아쉬워

프리미엄 대형 SUV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선호 세그먼트의 이동과 상향 평준화된 요즘 제품의 특성상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다. 때문에 기존 대중차 브랜드는 물론 럭셔리 및 슈퍼카 회사들도 프리미엄 대형 SUV 만들기에 열중이다.

추구하는 성격은 저마다 차이를 보인다.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고 성능에 집중하거나 값비싼 소재를 가득 둘러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공급이 적정선을 넘어버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선택의 즐거움은 불편함으로 바뀌고 혼란만 남는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신차에 소비자는 적지 않은 혼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메르세데스-벤츠 GLE는 1997년 선보인 M클래스를 바탕으로 이 분야에서 제법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회사의 처음 해외 생산 차종이기도 한 M클래스는 북미시장을 목표로 만든 대형 SUV다.

22년전 도전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당위성을 얻었고 출시 이후 세계적으로 200만 대 이상 판매되며 효자 차종에 등극했다. 2015년에는 벤츠의 새로운 네이밍 전략에 맞춰 GLE로 이름을 바꿨다. 작년 파리모터쇼에서는 4세대 신형 GLE가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 9월에는 국내에도 공식 출시했다. 오랜 시간 프리미엄 대형 SUV 명맥을 지켜온 GLE가 어떤 새로운 모습을 안겨줄지 확인해 봤다.

▲디자인&스타일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GLE는 듬직한 체구가 처음 시선을 사로잡는다. 신형은 길이(4,930㎜)와 너비(2,020㎜)는 이전 세대보다 각각 100㎜ 길어지고 85㎜ 넓어졌다. 높이는 1,770㎜로 기존과 같다. 커진 차체에 맞춰 겉을 꾸미고 있는 세부 요소도 전부 큼직하다. 팔각형 수직 라디에이터 그릴과 가운데에 자리 잡은 공책만 한 크기의 벤츠 로고, 볼록하게 솟은 보닛 형상이 주변을 압도한다.

두 줄의 주간주행등으로 멋을 낸 헤드램프는 개별 조절 가능한 84개의 LED가 장착된 적응형 멀티빔 LED 램프다. 교통 상황에 따라 반응해 운전자 시야를 충분히 확보해 준다. 또 반대편 차 운전자의 눈부심을 방지해 준다. 앞 범퍼는 마치 GLE 63 AMG에서나 볼법한 모양이다. 실제로 공기 통로가 큼직하게 뚫려 있지는 않지만 시각적인 만족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옆은 GLE 특유의 넓은 C필러와 큼직한 유리창이 인상적이다. M클래스부터 이어진 정통성을 계승하면서도 차를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도어에는 철판을 접거나 과감한 캐릭터 라인을 추가하지 않았다. 덕분에 매끄럽고 우아하며 안정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앞뒤 범퍼 끝단에 공기 통로를 뚫어 자칫 심심해 보일 수 있는 옆면에 포인트를 줬다. 20인치 AMG 휠은 큰 불만이 없지만 타이어 지름이 넓고 휠 하우스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뒤는 날카롭게 찢어진 테일램프를 통해 최신 벤츠 라인업과 맥을 같이한다. C필러 뒤 유리창 디자인과 어우러져 불안정하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사각 배기구를 비롯해 곳곳에는 두툼한 크롬도금을 가득 둘렀다. 그래서인지 차가 한층 더 화려한 느낌이다.

실내는 파격적이다. 예전의 형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어 트림까지 이어지는 수평형 구조를 통해 라이벌 대형 SUV들과도 성격을 구분지었다. 대시보드 아래에는 직관적인 두 개의 12.3인치 모니터가 위치한다. 밑으로는 네 개의 사각 송풍구와 간단한 공조장치 버튼이 있고 센터터널 주변은 깔끔한 구성이다. 벤츠가 새롭게 밀고 있는 터치 패드와 에어서스펜션 조절 버튼도 눈에 띈다.

계기판과 터치가 지원되는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통해 웬만한 기능은 전부 조작할 수 있다. 연동성이 뛰어나고 그래픽이 훌륭해 보는 맛이 난다. 벤츠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MBUX도 제법 유용하다. 간단한 명령어만으로도 충분히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어서 주행 중 활용도가 높다. 세 구역으로 나뉜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실내 기술의 방점을 찍는다. 단순 속도 표시를 넘어 기울기 세팅과 동력 배분까지 전부 보여준다. 간결한 실내 구성과는 정 반대로 최첨단 조종석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프리미엄 대형 SUV에 걸맞게 소재는 호화롭다. 진짜 나무와 천연 가죽의 향연이다. 저렴한 검은색 플라스틱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알루미늄으로 마감한 버튼은 무드 등에 반사돼 은은한 간접조명 효과를 낸다. 지지력이 좋은 시트와 부메스터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도 실내 감각을 높이는데 한몫한다.

80㎜ 길어진 휠베이스(2,995㎜)로 2열 공간은 부족함이 없다. 이전 세대보다 69㎜ 확장된 무릎 공간이 주는 만족이 크다. 등받이 각도가 이상적이고 가운데 턱도 낮아서 성인 3명이 앉아 장거리 이동을 해도 문제없을 듯하다. 큼직한 컵홀더와 2열 전용 개별 공조장치, USB 포트 등 편의 품목을 살뜰히 챙겼지만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파노라마 선루프가 없다는 건 아쉽다. 트렁크는 기본 825ℓ이며 2열을 접으면 최대 2,055 ℓ까지 늘어난다.

▲성능

시승차는 가솔린 엔진을 넣은 GLE 450 4매틱이다. 동력계는 직렬 6기통 3.0ℓ 트윈터보 엔진을 넣어 최고출력 367마력, 최대토크 51.0㎏·m의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 여기에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위치한 48V 기반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EQ 부스트를 탑재했다. 이를 통해 22마력의 출력과 25.5㎏·m의 토크가 가속 시 내연 기관에 추가적으로 더해진다.

EQ 부스트가 주는 특징은 명확했다. 핵심기술로 꼽히는 통합 스타터-제너레이터 덕분이다. 모터와 발전기를 하나의 모듈로 결합해 전류가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이다. 세세한 과정을 운전자가 알기는 쉽지 않지만 소음과 진동 없이 편안하고 부드러운 출발은 확실히 경험할 수 있었다.

효율도 돋보인다. EQ 부스트는 운전자의 페달 반응을 빠르게 분석해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기어비를 조정했다. 그 결과 에코모드에서 시속 100㎞로 정속 주행 시 엔진 회전수는 고작 1,400rpm밖에 되지 않았다. 또 코스팅 중립 제어 기능(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변속기는 자동으로 중립으로 위치해 연료 효율을 끌어올린다)을 더해 극강의 효율을 챙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주는 추가 성능을 경험하기 위해 운전 모드를 스포츠로 옮겼다. 스티어링 휠이 묵직해지고 스로틀 반응도 한층 적극적으로 바뀌었지만 운전자가 느끼는 체감 가속은 빠르지 않다. 운전의 즐거움이나 역동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고속 안정성이 뛰어나 속도를 아무리 올려도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다.

댐핑조절 시스템이 들어간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휠 반응도 마찬가지다. 먼저 서스펜션의 경우 안락한 승차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민첩한 거동에는 한계를 보인다. 스포츠 모드에서도 예민한 감각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직하게 도로의 굴곡을 거르는 수준이다. 스티어링 휠은 기본 세팅 값이 매우 가볍다. 도심 속 주행이나 주차 시에는 편하겠지만 본격 스포츠 주행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모로 장거리 크루징에 최적화된 차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다만 상품 구성에서 빠진 반 자율주행 기능이 살짝 아쉽다. 신형 GLE에는 첨단운전보조시스템(ADAS) 중 차간거리 조절 및 차선유지 보조 기능이 빠져있다. 반대로 차선이탈 경보장치와 앞차와의 거리를 파악해 제동 위험도를 알려주는 기본 기능 등은 포함했다. 능동형 크루즈컨트롤은 이젠 국산차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능이다. 회사 관계자는 GLE 출시 행사장에서 이 같은 질문에 "최초 물량은 안정화를 찾아가는 단계"라며 "다음 제품 개선이 있을 때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계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또 "완전변경을 거친 최초 물량의 경우 부품 수급의 문제로 빠지는 품목이 있을 수 있지만 개선 제품을 내놓으면서는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총평

벤츠 GLE의 목적은 분명하다. 운전자와 탑승자 모두에게 고른 만족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 넉넉한 출력을 바탕으로 EQ 부스트가 주는 부드러움이 일품이고 서스펜션 및 핸들링의 합도 훌륭하다. 프리미엄 대형 SUV의 본질과 방향과도 잘 맞는다. 여기에 오랜 시간 쌓아온 벤츠의 내공과 기술력이 잘 묻어있어 편안하면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벤츠식 SUV의 이상적인 표본을 보는 것 같다. 단 1억원이 넘는 차에 왜 없을까 하는 몇 가지 편의 및 안전품목은 분명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GLE는 300d 4매틱과 450 4매틱 두 가지 트림으로 구성되며 가격은 각각 9,030만원, 1억1,05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