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성능 스포츠카는 효율과 거리가 먼, 오로지 달리기를 위해 만들어진 차를 떠올리게 한다. 일반적인 차에서
찾을 수 없는 공기역학적 디자인으로 개성을 한껏 뽐내는 건 기본이고, 우렁찬 배기음으로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물론 포르쉐도 예외는 아니다. 오랜 기간 고성능을 추구한 탓에 60년에 걸쳐 등장한 서른한 가지 제품은 한결같이
고성능이다. 그러나 포르쉐도 점점 까다로워지는 환경 규제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엔진이나 변속기를 비롯한
공기역학적 디자인 등 기술의 핵심을 '효율성'에 맞췄지만 규제는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디젤과 하이브리드 버전의
카이엔S가 등장한 배경이다. 포르쉐가 내놓은 최초의 하이브리드카 '카이엔 S 하이브리드'를 시승했다.
▲스타일
지난해 여름 국내 시장에 처음 공개된 뉴 카이엔 시리즈는 구형보다 차체가 커졌지만 새로운 디자인 덕에 작고 날렵
하게 보인다. 헤드램프, 앞 범퍼, 보닛 후드, 리어램프 등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거친 SUV임에도 시각적으로 고성능
스포츠카의 느낌은 역력하다. 구형은 폭스바겐 투아렉과 플랫폼을 공유한 탓에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단순하면서 볼륨
감을 살린 디자인이었다. 어느 한 곳에 시선이 가기보다 전체적으로 카이엔임을 알아차려야 했지만 신형은 앞 범퍼로
시선이 집중되고 보닛의 강한 선이 차의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이다. 헤드램프는 단순 물방울 모양으로 변경됐고, 공기
흡입구 디자인은 날렵하게 다듬어 차가 낮고 작아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준다. 뒷 모양은 한층 세련돼 보인다. 구형의
우직함과 달리 부드러운 느낌이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파나메라와 비슷하다.
운전석에 앉으니 포르쉐 엠블럼이 박힌 스티어링 휠이 눈에 들어온다. 구형과 달리 간소화됐다. 오로지 수동 변속
버튼만 있을 뿐이다. SUV지만 포르쉐 본연의 주행 본능을 살린 듯하다. 휠 뒤편으로는 5실린더 타입 계기판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속도계가 아닌 엔진 회전수를 알려주는 회전계가 자리했다. 또한 하이브리드 차종에서 볼 수 있는 에너지
이동 상황 표시 액정이 회전계 옆에 설치됐다. 시선을 돌려 센터페시아와 기어 변속 레버 근처를 살폈다. 다양한 버튼이
많아 처음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내 익숙해져 실제 사용할 때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감성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역력하다. 손이 닿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김없이 가죽이나 부드러운
천으로 마감했고, 곳곳에 알루미늄 장식을 덧대 산뜻함 느낌을 연출했다. 또한 파노라마 썬루프는 뒷좌석에서도 개방
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주행 & 승차감
카이엔S 하이브리드는 포르쉐의 첫 하이브리드카로, V6 2,995㏄ 슈퍼차저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병렬 하이브리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엔진과 모터 출력의 합은 380마력. 최대토크는 59.2㎏·m다. V8 엔진을 얹은 카이엔S의 400마력에
버금가고, 카이엔 디젤의 최대토크(56.1㎏·m)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연료효율은 ℓ당 12.1㎞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93g/㎞로 다른 포르쉐 모델과 비교하면 100g/㎞쯤 낮다.
이 차는 모터만으로도 주행이 가능한 풀 하이브리드카다. 전반적인 주행 특성은 다른 하이브리드 차종과 비슷하다.
신호 대기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자 시동이 꺼지고 대기모드로 변했다. 멈춤이 잦거나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서행 구간에
서는 엔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만큼 정숙성 또한 뛰어나다.
엔진 힘이 필요한 구간에서는 강력한 엔진이 제 성능을 발휘한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자 몸이 뒤로 젖혀지며 차는
앞으로 돌진했다. 조용했던 모습과는 달리 멋진 사운드를 들려주며 속도계는 거침없이 올라갔다. 강력한 힘을 내는 엔진
에다 8단 팁트로닉 자동변속기가 탑재돼 빠르고 부드럽게 가속되는 느낌이 일품이다. 속도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아 고속
주행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내리막길과 같은 탄력주행이 가능한 구간에서는 세일링 모드로 변경돼 엔진이
꺼지고 차의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변환, 배터리에 저장하게 된다. 저항이 줄어든 탓에 일정 속도를 한동안 유지할 수 있고,
가속 페달을 알맞게 밟아주면 전기 모터로도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
코너링 구간에 들어섰다. 카이엔은 네바퀴굴림방식을 쓰지만 움직임이 조금 독특했다. 차의 뒤편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때문이다. 뛰어난 코너링 실력을 지녔기에 순간 하이브리드카를 탄 게 아니라 단지 카이엔을 타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이 차는 셀 240개로 구성된 니켈수소(Ni-MH) 배터리를 트렁크 아래에 탑재했다. 무게는 80㎏이다.
▲총평
카이엔 S 하이브리드. 이렇게 조용하고 연비 좋은 포르쉐가 또 있을까 싶다. 포르쉐를 탔지만 이번만큼은 얌전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다른 고성능 차를 탈 때와 달리 '게이지가 고장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시승하는 내내
연료 부족 걱정도 없었다. 물론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특성을 살려 경제적으로 운전했을 때가 그렇다는 말이다. 가격은
1억2,050만 원, 코리안패키지를 적용하면 1억4,990만 원이다.
시승/ 박찬규 기자 star@autotimes.co.kr
사진/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
출처 - 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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