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조선산업
1961년 5.16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수출로 외화를 획득하고 산업구조를 공업화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개발계획을 강력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산업구조가 취약해 경공업 중심으로 산업화가 추진되어 중공업인 조선산업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못하였다.
정부는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인 1967년 조선공업진흥법을 제정하여 70년대 이후 우리 나라의 조선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기술적으로는 표준형 선박의 설계를 제정하고 기존의 목선을 강선으로 개량하도록 장려하였다.
1962년 당시 국내의 조선업체는 강선 조선소 9개소를 비롯하여 목선 조선소 97개소, 선박용 엔진 제조 및 수리 103개소, 의장품 제조 6개 등 총 215개소로 1957년의 173개소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으나 건조실적이 저조하여 가동률은 2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조선소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한조선공사는 3000톤급 선대 3기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외에 부산조선공업, 대선조선철공소, 대영조선철공소, 방어진조선철공소, 대림조선소, 조선기계제작소 등이 있었다.
이 시기에 조선기술은 목선 건조에서 강선 건조로 추세가 바뀌고 있었으며 선박을 블록으로 분할하여 제작한 뒤 선대에서 조립하는 블록 건조방식이 처음 도입되고 있었다. 1966년 대한조선공사가 자체 기술로 건조한 2600 GT급 화물선이 최초로 미국선급협회의 검사에 합격했으며 1969년에는 250 GT급 참치어선 20여 척을 대만에 수출하는 등 해외 시장 개척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1960년대 5개년 경제계획의 적극적인 추진은 우리 나라 경제의 규모를 급속히 확대시켰으며, 이에 따라 선박의 수요도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총수요 중 국내 건조 비율은 갈수록 낮아져 1차 경제계획 기간 중에는 총 국내수요량의 70%를 외국에서 수입하였으며 2차경제계획 기간 중에는 86.5%를 수입하여 국내 공급율은 약 20%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외국에서 도입된 선박 중에는 상당수가 국내 건조가 가능함에도 수입된 것인데 이는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에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해운 및 어업에도 차관 형식으로 경제협력자금의 상당 부분을 선박구입에 지원받게 된 반면 무상인 대일청구권 자금에서는 20톤 미만의 연안어선 건조자금 밖에 지원을 얻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었다.
1960년대 말에는 선박의 국내 자급도가 10∼20% 수준으로 저하되어 조선소의 시설 확장이 요구되었다.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선박의 대형화가 진행되던 추세였는데 최소 10만톤급 이상의 선박 건조능력을 갖춘 조선소가 필요하였다. 부산 영도에 위치한 대한조선공사는 1968년 민영화가 되고 자본금을 증자하면서 시설을 확장하여 12,000톤급 도크를 6만톤급 도크로 확장하고 새로 6만톤급 도크를 2개 더 확보하였다.
요약과 의견
1) 1962년 당시 강선 조선소 9개소, 목선 조선소 97개소
2) 건조실적이 저조하여 가동률은 20% 수준에 불과한 실정
3) 목선 제조 능력은 우리 선조님들도 이미 가지고 계셨다.
4) 거북선 1척은 약 120ton정도다. 전국 조선소를 풀가동하고 합치면 거북선 377척을 만들 수 있다.
5) 저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건 거북선이 아니다.
신라 땐 동북아 해상무역질서를 주도했다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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