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엠바고란?
- 기자가 취재는 하되 취재원의 요청 또는 기자들의 합의에 의해 정해진 기간까지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함.
▶ 세계 3대 과학잡지(학술지) 불리는 네이처, 사이언스, 셀.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경우 과학과 공학에 관한 논문들이 게재 되며 셀의 경우 생물학의 논문이 게재됨.
전 세계의 기자들은 속보와 특종 경쟁을 치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대게 과학분야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기자들은 속보 경쟁을 하지 않고 질로써 보도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기자들에 한해서 말이다.
특히나 앞서 언급한 세계 3대 과학잡지라 일컬어지는 잡지에 실리는 논문들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 3대 과학잡지에 게재되는 논문과 이들 과학자들에 관해서는 특이한 부분이 있다.
바로 엠바고인데 이들 잡지에 가장 먼저 논문과 연구한 과학자 또는 연구팀들에 관해 실리고 이후 다른 기자들이
이를 인용하는 형식으로 취해진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엠바고를 통해 잘못된 연구내용이 과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일반인에게 노출되는 일을 막는
최소한의 안정장치 역할을 하며 과학전문지가 발표를 하는 시기가 바로 연구내용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시점이라는 것.
또 이들 잡지의 생명은 새로운 발견을 최초로 소개하는 것이게 만일 다른 언론에서 먼저 보도해버리면
전문지는 적지 않은 피해보기에 엠바고를 걸어둔다.
특히, 연구자들은 논문게재를 위해서는 엠바고 원칙을 지켜줄 것에 대한 서명을 받는다.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 또한 서명을 받는다.
또한 엠바고가 파기되면 논문게재 취소와 함께 연구자에게도 불이익이 주어지며 같은 연구자가 다른 논문을 게재하려 할때도
당연히 불이익이 주어질 수 밖에 없다.
2005년 MBC PD수첩은 2차례에 걸쳐 황우석 박사에 대해 집중 취재한 내용을 방영했고
사기라는 것을 알게된 국민들은 분노했으며 수사와 재판 그리고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논문은 취소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 있기 1년 전 그러니까 황우석이 사이언스지에 게재할 당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4년 4월 9일(한국시간), 사이언스지를 발행하는 미 과학진흥회(AAAS)는
"4월 13일 새벽 4시(한국시간)까지 황우석의 논문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지 말것"이라는게 명시된 보도자료를
미 과학진흥회에 등록된 기자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AAAS의 엠바고를 파기하고 발표 하루 전인 12일, 중앙일보를 통해 '장기복제'에 관한 기사가 특종으로 나간다.
이에 의학, 과학 전문 기자 및 각계의 비판이 일자 ‘본지가 특종보도 안했다면 국내학자 개가를 외신 베낄 뻔’이란 제목의 기사로
“엠바고는 취재원이 정식으로 요청하고 기자가 수용의사를 밝힌 경우에만 성립된다”며 “알권리가 엠바고보다 우선이다”란
한 언론학자의 ‘원론’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해당 기사를 작성한 홍모 기자는 당시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어떠한 곳의 독자적인 취재를 통해 이뤄진 보도"였다고 말하면서 "기사의 논란이 '열심히 취재한 기자에게는 엠바고를 깼다,
낙종한 기자들에 대해서는 엠바고를 지켰다'고 일반인이나 청취자들에게 인식되는 게 문제이며 엠바고 준수의 이면에는 '외신 베껴쓰기"
가 있다며 말을 했다.
사이언스지를 발행하는 AAAS는 이에 대해서 해당 기자이름을 공개했고 기자회원의 일정 기간정지를 결정했었다.
그리고 당시에 황우석 논문은 어마어마한 것이었기에 불이익을 주려던 것을 경고로 낮추고
사이언스지 커버스토리에 정상적으로 게재될 수 있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홍모 기자는 이미 이전에도 이와 같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럼 더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 보자.
월드컵으로 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2002년, 충북대 배석철 교수는 지방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연구 끝에
위암을 억제하는 유전자 '렁스3(Runx3)'의 기능을 규명한 논문이 셀의 4월 5일자 커버스토리에 게재될 예정이었다.
셀 또한 당연하게도 4월 4일까지는 엠바고를 걸어 두었다.
배석철 교수는 이에 관한 보도가 중앙일보를 통해 나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 홍모 기자에게
엠바고를 파기면 안되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고 보도 자제를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했다.
결국, 중앙일보를 통해 기사는 나갔다.
중앙일보의 기사가 나간 직후 배석철 교수는 셀의 편집진으로부터
"우리 저자의 언론 및 공중과의 대담은 자유지만 셀이 나온 뒤로 제한한다" 는 경고를 받아야만 했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빛을 발한 자신과 팀원들의 연구성과에 대해서 축배를 들 시간도 없이
셀의 편집진에게 이에 대한 전말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그리고 셀의 4월 5일자 커버스토리에는 배석철 교수의 연구팀들의 논문은 배석철 교수의 각고한 노력 덕분에
논문 취소는 피할 수 있었지만 당초 예정과는 달리 불이익을 받아 마지막에 실리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2002년과 2004년 두 번에 걸쳐 엠바고를 어긴 홍모 기자
당시 그의 저서에서는 "한국의 의학 기자들은 논문 발표 전에 보도를 해서 문제"라는 내용도 있었다.
배석철 교수는 소송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배석철 교수는 다른 연구를 포함해 할 일들이 너무 많았기에 소송은 할 수 없었다.
홍모기자는 방송과 여러 매체 등에 나와 자신의 이같은 행위는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같은 행위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혜택은 다 누리면서 하는짓은
걸뱅이네요.
누군가요?
딱 답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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