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전부일 겁니다.
케임브리지중국사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Chapter 13 - The KMT-CCP Conflict 1945-1949; P.726).
1945년 초가을 미해병 병력 5만3천명이 베이징 비롯한 중국 북동부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고
국민당 정부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The United States also intervened on the government's behalf, transporting approximately half a million of its troops into North China, Taiwan and Manchuria. A force of 53,000 US marines occupied Peiping, Tientsin and other points in the north pending the arrival of government troops."
http://www.lib.csu.ru/ER/ER_China/fulltexts/CambridgeP13_723-788.pdf
중요한 사실들을 너무 모르고들 있어요.
맥아더가 중국 대륙을 중국 공산당에 빼앗긴 것에 대해 심각하게 분통해했습니다.
이것이 일본이 아닌 한반도 분단을 택하는 제1원인이 됐습니다.
한국전에 대해서 김일성이 남침했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들이 감춰져 있습니다.
스탈린의 소련의 참전
일본의 개념 없는 저항 (이건 소련의 참전을 기다렸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조선과 한반도에 대한 미국과 서양열강의 이해 부족 (그나마 소련은 어느 정도 정보가 있었죠. 그래서 한반도 진주를 원했는 지도 모르죠.)
이런 복합적인 문제로
일본의 죄값을 한반도 (한민족)가 지게 되는 역사의 질곡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1945년 당시면 아직 국민당이 중원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미 1945년 9월 38선이라는 미소군사분계선이 확정되고 말뚝을 박기 시작했으니
위에 중원이 공산화되어 한반도가 분단되었다는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모든 게 하나만이 원인이 아니지만
만약 중원이 공산화되지 않았다면
김일성이 남침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또는 김일성의 남침을 미국이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방향은 극단적이지만 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사의 첫단추의 흔적이 얼마나 오래 가는 지를 보면
용산이라는 지역이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의 주둔지로 상정되면서
청일전쟁 떄 청나라 군사, 이후 일본군, 이후 미군의 주둔지로 400년을 외국군 주둔지가 되죠.
이처럼 2차세계대전 직후 한반도의 분할을 미국이 계획을 내고 막상 분단되면서
북한 정권의 붕괴 이후 북한지역의 열강 분단 통치 계획만 봐도
앞으로 우리가 확실히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100년 이상 몇백년동안 북한 지역의 분할에 대한 얘기가 수시로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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