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재밋게 봐서 올립니다.
보배 게시판이 글자수 제한이 있어서 중간에 짤리다보니 나눠서 올리게되었습니다.
펌이고 라시안 님이 원작자입니다.
168시간의 공포 [라시안]
-zero-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빠른 두뇌플레이와 강한 정신력을 가지신 분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세기의 대결!
승자에겐 최고의 값진 선물이 , 패자에겐 올 여름 오싹한 추억거리를 선사할 비문산장 이벤트가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무한한 상상력과 용기를 가진 신체건강한 남녀라면 누구나 참가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
상금 천만원과 함께 멋진 여름을 보낼 분은 주저없이 신청 버튼을 누르고 응모해주세요.
잊지못할 추억이 될 5회 비문산장 여름 특별 이벤트!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재야. 우리 저거 참가해 보자. 재미있겠다."
"자식.. 호기심 많은건 여전하다니까? 이벤트 회사조차 분명하지 않은걸 왜 해?"
"그냥 따분해서.. 애인이 있어서 바닷가로 놀러갈수 있는것도 아니고 회사도 그만 뒀으니 할일이 없잖아"
"헤어진거냐? 니가 일방적으로 찬거잖아."
"그럼 세번이나 바람을 피우고 용서를 비는 애인을 받아주란 말이냐? 개나 줘라.
암튼 할꺼야 말꺼야?"
"난 그런거 안해. 뭔지도 모르고 머리쓰는건 딱 질색이거든. 황준수. 너도 신중하게 생각해라."
"생각하고 말게 어디있어. 너 안하면 나 혼자라도 해봐야겠다. 상금타면 내가 크게 한턱 쏠께!"
"상금이나 타고와서 말하지?"
"큭큭.."
그때.. 나는 친구의 말대로 조금더 신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 그 이벤트 광고는 따분하기만 했던 나에겐 빛 좋고 구미 당기는 미끼였으며
나는 아무런 주저없이 미끼를 덥썩 문 멍청한 생선에 불과했다.
한번의 클릭으로 인해 그 여름날은 숨쉴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공포로 물들게 된다.
"다 적었다. 근데 무슨 이벤트 신청서에 참가동기나 인적사항도 안적냐?"
"것봐. 좀 이상하다고 했잖아."
"정말 그러네? 신청자가 많으면 예심을 거처야 할텐데 이름하고 전화번호만으로 어쩌겠다는 거야? "
"제비뽑기라도 하나보지."
"나 확률싸움에는 약한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연기 자욱한 P.C방 구석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담배를 물고 모니터를 바라보던 준수의 핸드폰에
수신을 알리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아무생각 없이 핸드폰을 집어들고 문자를 확인했다.
"너한테도 문자라는게 다 오냐? 혹시 성인남녀 무료채팅. 오빠 나 한가해~ 이런거 아냐?"
"어? 아냐. 이벤트 신청 확인 문자야"
"정말? 어디 봐."
준수의 말에 믿기 힘들다는듯 성재가 핸드폰을 나꿔챘다.
그곳에는 분명히 준수의 이름과 함께 간단한 문자가 와있었다.
황준수님. 비문산장 이벤트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신청서에 남겨주신 메일주소로
접속하시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접수하자마자 바로 문자가 오냐? 신기하다."
"그러게? 이 회사 진짜 부지런하네."
"빨리 메일 열어봐."
조금전까지도 관심이 없다는듯 퉁명스러웠던 재성은 직접 도착한 문자를 보더니 신기하다는듯
메일 확인을 재촉했다. 준수도 궁금함에 재빨리 메일을 열어 도착한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황준수님. 비문 산장 이벤트에 응모를 해주시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접수마감은 내일 오후 6시 까지이며 신청자 수에 상관없이 7명을 선발하게 됩니다.
선발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틀뒤인 7월 15일 아침 8시. 참가자는 지시에 따라 서울역, 청량리역, 종로역, 동대문역, 시청 광장
영등포역 노량진역 등 7개의 장소 중 한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2. 황준수 님께서는 추첨 결과 서울역 광장 으로 선택 되셨습니다.
3. 정각 8시가 되면 주최측에서 각 장소마다 본선 장소를 적은 메모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내보내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이 될수도 있고 물건이 될수도 있으며 동물이 될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정한 심사를 위해 다른 장소를 적어놓은 함정 메모가 같이 섞여 있으니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제한 시간은 한시간이며 시간이 지나면 숨겨놓은 메모가 동시에 철수됩니다.
시간내에 메모를 찾지 못하거나 함정메모를 찾아 다른장소로 이동하신 분은 탈락입니다.
4. 메모를 발견하고 정확히 본선장소로 도착한 7명이 이벤트의 최종 참가자가 되는것입니다.
5. 장소를 7군대로 분류하는 이유는 같은 장소에 많은 인원이 몰릴 경우 불의의 사고나 본선지의
노출이 있음을 염려해서임을 양해바람니다. 참고로 4회때의 응모인원은 1500명 이상이였습니다.
6. 준비하실 물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간단한 세면도구. 7일동안 입을 속옷과 양말. 그밖의 부피가 적은 MP3나 화장품은 자유.
옷은 활동하기 편한 복장으로 하시되 여벌의 옷은 준비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 핸드폰은 지참하셔도 관계없으나 최종 선발이 되어 산장에 도착하신 후에는 사용하실수 없습니다.
7. 그럼 황준수 님의 행운을 빕니다.
*메모의 힌트*
그것은 자유롭지만 늘 구속되어있다. 언제나 같은곳을 지키며 시간의 흐름을 읽고 있다.
외롭지만 즐겁고 항상 쫓기지만 변함없이 돌아온다. 여름은 그것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이거 너무 어렵지 않냐? 무슨 추점을 저딴식으로 해? 그리고 1500명 이상이면 200 : 1이 넘잖아?"
"아냐. 재미있어 보여.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데? 꼭 보물찾기 같잖아"
"미친놈. 난 인생 편하게 살란다. 잘 다녀오고 나중에 이야기나 들려줘."
"좋아. 일등하길 빌어다오 친구야!"
준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작은 스포츠 백을 꺼내 주섬주섬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옷도 준비할 필요가 없다니 가방에 든 물건은 치약 칫솔 전자사전 mp3 등 몇가지가 전부였다.
이번에야말로 즐거운 여름이 되겠다는 부푼 기대를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15일 아침이 되었고
밤새 힌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 날을 지샌 준수는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서울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광장으로 나오니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힌트도 아직 이해 못했는데 이 많은 사람들속에서 어떻게 메모를 찾지?"
준수는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막막해짐을 느꼈다. 서울역 광장이라면 우리나라 최고 규모의 인파가
몰리는곳이 아닌가. 시간에 쫓겨 아침도 먹지못한 그는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가지고 나와 홀짝홀짝
마시며 벽에 기대어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시계는 8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시커먼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준수의 팔목을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학생. 담배있으면 하나만 빌려줘."
화들짝 놀라 재빨리 손을 뿌리치고 아래를 바라보니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떡진 머리를 한 노숙자가
자신을 보며 담배를 구걸하고 있었다. 그가 다가와 앉자 하수구 냄새와 흡사한 악취가 진동한다.
"담배있으면 하나만 빌려줘. 응? 학생."
"제가 담배를 안피워서요.. 죄송합니다."
"그거 안타깝군.. 쩝.."
노숙자는 실망한 눈초리로 들고 있던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를 보니 준수는 왠지 짠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죽하면 어린 사람한테 담배를 구걸할까..
그냥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그의 눈빛이 마음에 걸린 준수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디스 한갑을
사서 술을 마시고 있는 노숙자에게 건냈다.
"저 이거라도 괜찮다면 피우세요. 아저씨 드릴려구 사온거에요."
"거 학생.. 정말 마음이 곱구만.. 고맙네."
"아니에요. 기운내시고 술 조금만 드세요."
"정말 고마워. 오늘은 이 담배를 피우며 더이상 시계탑과 눈싸움을 안해도 되겠어. 껄껄껄.."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를 보며 내심 흐뭇해하던 준수는 잊고 있었던 메모 생각에 아차하며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꼭 자신처럼 메모를 찾는 응모자처럼 느껴졌다.
-대체 뭐지? 도무지 알수가 없어.. 생각이 안나도 장소에 오면 떠오를줄 알았는데 도무지 생각이 안나..
-자유롭지만 구속되어 있는것? 그건 너무 범위가 넓어..여름이 최고의 선물이라구?
준수는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힌트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야되. 메모라면 정말 보물 찾기처럼 숨겨놓았을까? 아냐.. 이 넓은 서울역 광장에서
-메모 하나를 찾자면 한시간이 아니라 하루로도 모자랄지 몰라.. 그럼 사람이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고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하나씩 물어볼수는 없잖아.. 물론 물어본다고 대답해주지도 않겠지만..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었다. 많은 기대를 가졌던 만큼 준수는 꼭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고 싶었다.
마음이 초초해지다보니 주변에서 조그만 탄성이 들려도 메모를 찾아서 기뻐하는 사람같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분..
-정말 모르겠다..외롭지만 즐거운거.. 같은 곳을 지키면서 변함없이 시간의 흐름을 읽는것..
-아! 맞다. 시계탑!!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필요로 하니까 즐겁고
-움직일수없이 고정되어 있으니까 외롭고 시간의 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수 있잖아!
-아.. 왜 생각을 못했지?
해답을 찾은듯 했다. 시간은 8분전..
준수는 정신없이 시계탑을 향해 뛰어갔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누군가 먼저 메모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도착해서 손을 집어 빙 한바퀴를 돌자 갈라진 틈새 사이로 하얀색의 종이 한장이 보였다.
준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접어진 종이를 펼쳐들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메모를 발견하신 즉시 다음 장소로 이동하십시오*
9 :10 서울역 발 강릉행 기차탑승.
준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6분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는 메모를 주머니에 대충 찔러넣고 가방을 움켜쥔채 뛰기 시작했다. 운좋으면 늦지않게 도착할터.
그는 알수없는 기대감에 부풀어 함박 웃음을 지었다. 뛰면서 바라보니 자신의 앞으로 담배를
건내받은 노숙자가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 고맙다는듯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기차표 예매하는 창구에 도착해 지갑을 꺼내던 준수는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마디에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 고마워. 오늘은 이 담배를 피우며 더이상 시계탑과 눈싸움을 안해도 되겠어. 껄껄껄..
갑자기 돈을 꺼내려다 멈춘 준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걸 느꼈다.
표를 건내주고 돈을 받으려던 창구 여직원은 그런 그를 보고 이상하단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었다.
-아차! 이건 함정이구나!
준수는 자신이 들고 있는 메모가 함정임을 알아채고는 발걸음을 돌려 미친듯 뛰어가기 시작했다.
-정답은 그 노숙자였어! 자유롭지만 구속되어 있는건 돌아갈곳 없이 서울역에 죽치고 있는 그를 의미해
-외롭지만 많은 사람을 구경할수 있어 즐겁고 매번 단속에 걸려 쫓겨나지만 갈곳이 없는 그들은
-다시 서울역으로 모여들어..여름은 더우니까 노숙하기엔 더할나위 없는 조건이고..
-같은곳을 지키며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면 시계탑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 사람뿐이야.. 이런!
시계를 보니 종료까지는 3분전..
준수는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 노숙자를 만났던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는 어디론가 이동 하려는듯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고 있었다.
"겨우 찾았네요.. 헉헉.. 아저씨 메모 주세요..헉.."
"내가 학생 마음 씀씀이가 기특해 힌트를 알려줬더니 이제서야 눈치챈건가? 허허..
여기있네. 난 전해주기만 하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이만 가겠네. 행운을 비네."
"감사합니다!"
땀이 잔뜩 밴 메모를 펼쳐보니 도착장소는 10시 종로5가역 1번 출구였다.
아직까지 한시간이나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안도한 준수는 땀을 닦으며 이동했다.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다들 모였으니 인사나 합시다."
"그래요. 며칠동안 같이 머물게 될껀데 우리 통성명이라도 하죠?"
종로5가역 1번 출구로 나오자 까만 봉고차 한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메모를 확인한후에
차에 올라보니 미리 도착한 6명의 맴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 순화 에요. 나이는 비밀이지만 직업은 에어로빅 강사에요.
이번 이벤트 참가때문에 휴가를 내서 짤릴지도 모르구요 호호.."
"저는 김 상훈 입니다. 나이는 25세 고시 준비를 하는 수험생입니다."
제일 문쪽에 있는 사람부터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했다. 자신을 소개하며 요란스럽게 웃는 최순화는
에어로빅 강사답게 건강하고 잘빠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단지 과도하게 노출한 복장이 흠이지만.
두번째로 소개한 김상훈이라는 남성은 한눈에 봐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것을 알정도로 두꺼운
검정색 뿔테를 착용하고 있었다. 간단한 체크무늬의 남방에 면바지를 입고 있는게 특징.
"제 차례인가요? 저는 본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냥 동팔이라고 불러주셥셔."
"동팔? 그건 아이디인가요?"
"네. 제 인터넷 아이디입니다. 제대한지 얼마 안되어서 특별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 중입니다."
"저는 니시키도 료 입니다. 국적은 일본이고 교포 2세입니다. 의대 재학중입니다."
동팔이라는 남성은 정말 제대한지 얼마 안된듯 짧은 머리에 구리빛으로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터질듯한 볼과 다이어트가 절실히 필요할만큼 뚱뚱한 몸집. 지나치게 큰 키가 특징이였다.
니시키도 료는 밝게 탈색한 상아색 머리에 웃을때 살짝 보이는 덧니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교포라 그런지 발음이 어색했지만 한국말도 잘했다. 단지 의사가 되려면 지나치게 탈색한
머리는 꼭 해결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김 진주. 직업은 소설가입니다. 이번 산장 체험이 작품에 도움이 될것같아 참가했습니다."
"저는 권준수 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잠시 무직 상태입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일하던 회사 역시 같은 계열이였습니다."
무표정에 여자치고는 날카로운 눈매와 인상을 풍기던 진주라는 여자와 준수까지 소개가 끝나자
모두의 시선은 준수의 옆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소년에게 집중되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쭈뼛거리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듯 헀다.
"아.. 저는 20살이구요. 꽃집에서 일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작은 가게거든요.
어리버리하고 실수해도 잘 부탁드릴께요. 이름은 이준호 입니다. "
"어머! 진짜 귀엽게 생겼다. 남자애가 어찌 그렇게 뽀얗니? 여자인 나보다 더 예쁜것같네. 너무하다 너~"
하얀 얼굴에 작은 체구를 가진 준호는 뭐가 그리 불안한지 계속 주변을 살피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런 소극적인 행동으로 어떻게 메모를 찾았는지 의문이였으나 준호는 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외모로는 판단할수 없는 아이큐 185의 천재 소년이였다.
준호는 소개를 마치자 준수의 팔에 팔짱을 끼고 가만히 기대며 말했다.
"느낌이 안좋아요.."
"무슨 소리니?"
"그냥 느낌이 안좋아요. 그러니 도착해서 무슨일이 생기면 절 좀 챙겨주세요. 부탁드려요.
저는 남자치고 힘도 없고 날렵하지도 못하거든요.. 대신 형에게 다른 도움을 드릴께요."
"불안해 하지마. 공포 체험 겸 추리 대결일텐데 뭐."
"그래두요.."
"좋아. 준호라구 했지? 형만 믿어. 넌 내가 책임지고 챙길께."
"기뻐요 헤헤.. 고마워요."
3시간 남짓 달리던 봉고차는 점점 좁아지는 산길로 접어들더니 이윽고 거친 브레이크의 소음을 내며
멈췄다. 차에서 내리니 그들 앞에는 상상한것보다 낡고 크기만 큰 산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 꽃이 가득피어있고 동화속에 나올법한 그림같은 집을 꿈꾼건 아니였지만 흉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낡고 흉직한 산장은 왠지 기분이 나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일주일 후에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무사히
게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행운을 빕니다."
얼굴에 이리저리 긁힌 자국으로 가득한 운전사는 잔뜩 구부정한 등을 두드리며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들은 운전사가 차를 몰고 출발하자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산장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흉직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고 보니 생각보다 깨끗했으며 비싸보이는 가구들과
영롱한 빛을 내는 크리스탈 장식이 가득했으며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탁자위에는 흰색의
옷 7벌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어리둥절한 그들이 뜻밖에 상황에 재미있다는듯 이리저리 둘러보자 갑자기 넓은 산장을 가득 메우는
기계음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행운의 비문 산장 5기 맴버 여러분.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너무 이른시간부터
모인탓에 다들 피곤하고 허기가 질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탁자의 놓여진
옷으로 갈아입으신 후 식당으로 모여주십시오."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몰라 다들 수근수근 대고 있었지만 준수가 옷 하나를 집어들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서자 다들 앞 다투어 옷을 집어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2층으로 올라가니 1부터 8이라고 씌여져있는 방이 호텔처럼 4개씩 마주본채 있었으며 플라스틱으로
작게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
"최순화? 내 이름이잖아? 어떻게 이름이 새겨져 있는거지?"
"더 좋은방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는것을 방지하려는것 아닐까요? 미리 번호를 정해줘서요."
별 이상할것 없다는 표정으로 동팔은 플리스틱 이름표를 손톱으로 벅벅 긁어보았다.
너무 세게 힘을 주었는지 이름표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자 그는 황급히 주워 다시 붙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도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가 추첨으로 뽑혀 온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즉석에서
보물찾기를 해 운좋게 뽑힌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름까지 미리 새겨넣을 수 있었을까요?"
"그건 진주씨 말이 맞는것 같네요. 플라스틱 판에 이름을 새겨 넣자면 최소한 우리들의 명단을
한시간 이상 전에 알아야 하는것 아닐까요? 더군다나 여기가 깊은 산속이라는것을 감안한다면
그보다 훨씬 전에 알아야겠죠."
진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자 상훈이 맞장구 치며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는것은 이상했다.
다들 복도에 서서 들어갈 생각을 하지않자 동팔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뭐 아무렴 어때요. 봉고차 타기전에 메모 확인하면서 이름 물어봤었죠? 그때 알았거나
차안에서 자기소개 할때 도청이라도 했나보죠. 하하. 다들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배고프네요."
동팔은 배를 쓱쓱 문지르며 자신의 이름이 써있는 방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6명의 맴버는 각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모였다. 그곳에는 요리사로 보이는 중년의 풍채좋은 여인이 음식을 나르고
있었고 그들이 먹기엔 다소 과분할만큼 많은 양이 식탁으로 줄지어 날라졌다.
통째로 먹음직스럽게 구운 칠면조부터 세종류의 셀러드 두종류의 빵. 스테이크와 초밥등등..
그들이 감탄하며 자리에 앉자마자 넓은 식당을 울리며 기계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한 음식들을 즐기며 편한 마음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이벤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먹을것에 정신이 팔려 아구같이 먹어대는 동팔이 시끄러웠던 진주는 그에 어깨를 치며 조금만
조용히 먹어줄것을 부탁했다. 료는 얌전히 나이프를 들어 칠면조을 먹기 좋게 자르고 있었으며
준수는 목이 탔는지 물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오늘밤 자정을 알리는 거실의 자명종 소리를 시작으로 168 시간동안 여러분들은 산장에 갇히게 됩니다.
물론 문밖으로 나갈수 있으나 반경 10m로 제한됩니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 탈출을 시도하는 분이
계시다면 탈락 처리와 동시에 목숨을 보장해드릴수 없게 됩니다.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뭐야? 목숨을 보장해줄수 없다니. 기계가 지금 협박하는거야?"
"조용히 좀 해봐요 동팔씨!"
"산장 내에는 7명의 참가자 여러분들 외에 음식과 세탁을 담당해주실 도우미 한분이 같이 생활하게
됩니다. 주최측에서 고용한 분이니 상금 경쟁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풀어야할 7가지 문제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믿음이 가지않는 기계음 섞인 음성을 들으며 준수는 샐러드를 접시에 덜었다.
평소에 그가 제일 좋아하는 참치 샐러드였다. 포크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자 그의 옆에 않은 준호가
거칠게 그의 손을 잡아 채고 접시를 빼앗아들었다. 들고있던 샐러드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준수는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이야?"
"형. 이건 먹지 마세요. 샐러드가 먹고 싶다면 감자 샐러드나 치킨 샐러드를 드세요."
"왜?"
"약이 섞여져 있네요. 참치 샐러드에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치킨 샐러드와 참치 샐러드에 공통적으로 들어가있는 양상추와 오이를 자세히 보세요. 서로 드레싱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때에 만들어 졌으니 야채의 신선도는 비슷해야해요. 샐러드란게 원래 빠르게
만들어서 빨리 먹어야하는 것이라 두가지를 따로따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긴 어렵죠. 그런데 참치
샐러드를 자세히 보시면 양상추와 오이가 약간 갈색빛이 돌죠?"
"정말 그러네.. 이쪽이 조금 더 시든듯한 느낌이 들어."
"무슨 약을 섞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마도 가루낸 수면제 같은 걸꺼에요. 가루약들은 대부분 농도가
높아 삼투앞을 일으키거든요. 그래서 야채의 수분이 빠져나와 드레싱이 오래되어 보이지도 않는데
바닥에 물이 많고 야채가 시든거에요."
준호가 초밥을 오물거리며 심각하게 설명하자 준수는 그 말을 납득했는지 참치 샐러드가 들어있는
볼을 들어 싱크대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약간 당황하는듯한 도우미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는 자리에
되돌아와 앉으며 손을 들어 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는 표현이였다.
그러자 준호가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더니 씨익 웃어보이며 초밥 하나를 입안으로 넣었다.
"오늘 자정이 되면 여러분들중 한분의 방에 미션을 적은 메모가 도착하게 됩니다. 7일동안 각자 한번씩
메모를 받게 될것이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잠이 든 저녁 산장 내에서 한가지의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쪽지에는 자신의 이름과 사건의 간략한 힌트.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름이
하나 적혀 있을것입니다. 그 의미는 즉.. 사건을 풀어야 할 사람은 본인이며 자신이 풀지 못했을 경우
적혀있는 다른 사람이 대신 살해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정답을 결정했으면 8번 방에 놓여진 컴퓨터에
답을 입력하시면 됩니다."
"살해? 뭐야!"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죽는다구?"
놀란 사람들은 일제히 식사를 멈추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서로 상의는 할수 있으나 직접적인 답은 본인이 제출해야하고 정답을 맞출경우 무사한 하루를 보내게
될것이고 만약 오답일 경우 메모에 적혀있는 다른사람이 12시간 내에 살해당하게 됩니다.
답을 못맞춰도 자신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나 동료를 아끼신다면 꼭 신중하시길 바랍니다.
7일후 종료시간까지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각각 천만원이 일괄 지급될것이며 5기 명예의 전당에
명단이 오르게 될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저것을 끝으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다들 식사도 멈춘채 인상을 쓰며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진주가 접시가 깨질정도로 힘껏 포크를 내려놓더니 신경질적인 말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놀려도 유분수지! 어디 함부로 죽이겠다는 말을해! 전 방으로 돌아가겠어요!"
"갑자기 입맛이 없어지는군요. 저도 더이상은 못먹겠네요."
"다들 진정하세요. 이건 그저 공포체험일 뿐이라구요. 우릴 겁주려고 하는 소리란 말이에요."
순화와 진주가 먼저 자리를 뜨자 위화감을 느낀 다른 사람들이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준수는 식당을 조용히 둘러보다 도우미와 눈이 마주치자 꾸벅 인사를 해보이고 자신의
방으로 걸어 올라갔다. 음산한 복도는 악마의 입처럼 알수없는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준수는 핸드폰을 들어 재성에게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메일의 내용처럼 산장은 통화권 외의
지역인듯했다. 할일도 없고 심심했던 그는 스포츠 백에서 mp3를 꺼내 듣기 시작했다.
눈감고 누워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몇곡을 들었을까..
무엇인가 차가운것이 자신의 팔을 움켜잡는 느낌에 준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났다.
"형.. 놀라셨나요?"
"아..준호이구나? 무슨일 있어?"
"여기서 재워주시면 안될까요? 혼자 있기 싫어서요."
"나야 상관없지. 근데 아직 오후야. 벌써자려구?"
"어젯밤 잠을 못잤거든요. 피곤해서요."
"그래. 나도 사실 정답 생각하느라 어젯밤 날 샜거든. 같이자자. 밤 12시부터 시작한다니까
아직 시간 많아. 벽쪽에서 잘래? 아니면 바깥쪽?"
"벽쪽이요. 그나저나 앞으로 조심하세요. 뭔가 안좋은 기분이 들어요."
"살인 어쩌구 한거? 다 겁주려고 하는 말이야."
"그래두요. 조심하면 좋잖아요. 그럼 먼저 잘께요. 안녕~"
준호는 준수의 뺨에 살짝 키스하고는 금새 잠들어버렸는지 새근거리고 있었다.
준수는 산장의 모든것이 의문 투성이였지만 제일 알수없는건 준호일꺼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푹신한 침대는 짧은 여행에 지친 그들에게 편하고 달콤한 휴식을 선사했다.
"꺄아아아아악 -"
저녁이 되고 자정이 되고 새벽이 될때까지 배고픔도 잊은채 정신없이 잠든 그들의 고막을
날카롭게 파고든 여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첫날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분명 돈많고 할일없는 작자기 꾸민 공포 체험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준수의 눈에
양 팔이 잘려져 살해당한 도우미의 시체가 식당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으며 들어서는 순간
역하게 풍겨오는 비릿한 피 냄새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순화의 모습을 본 그는
그제서야 이것이 단순한 공포체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준수 - 24세 컴퓨터 프로그래머. 현재 무직상태 181cm/69kg 신체적 특징 없음*
*최순화 - 29세 에어로빅 강사. 166cm/47kg 긴 팔다리와 균형잡힌 몸매가 특징*
*김상훈 - 25세 고시 준비중인 수험생. 176cm/65kg 두꺼운 뿔태를 쓰고 있으며 말수가 적음*
*동팔 - 26세 군 제대후 아르바이트중. 186cm/93kg 뚱뚱한 체구에 본명을 밝히는것을 꺼려함*
*니시키도 료 - 교포2세로 의대 재학중. 171cm/58kg 상아색의 머리와 덧니가 특징이며 교포2세*
*김진주 - 34세 소설가. 155cm/63kg 길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이준호 - 20세 유산으로 받은 꽃집 운영중.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며 아이큐가 185인 천재소년*
-one-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순화씨! 괜찮아요?"
"저것보세요..흐흑.. 사람이..도우미 아줌마가.."
준수는 순화의 안부를 살핀뒤 급히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료가 허리를 숙여
시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의대생이라서 그런지 그는 시체 앞에서 의외로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오른팔은 칼을 꽉 움켜쥔채 몸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고 그나마 왼팔은 아직 몸에
봍어있었지만 허연 뼈에 짖이겨져 너덜거리는 힘줄 몇가닥으로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완전히 떨어져 나간 오른팔이 미관상 더 나아보였다.
그리고 뒤에서 무언가에 얻어맞았는지 한쪽 머리가 심하게 함몰되어있는 상태였고 엎드린채
사후경직을 일으켜 똑바로 눕힐수도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지만 토막난 시체를 보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력이 요구됬다.
"무슨일이에요?"
"까아아아악!!!!"
이른 아침이라 다들 잠들어 있었는지 부스스한 머리와 졸린눈을 하고 내려왔다가 도우미의 시체를
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주는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고 동팔은
입을 틀어막고 연신 구역질을 하다가 참지 못하겠는지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럼.. 살인이 일어날꺼라는 말이.. 사실이였단 말이에요?"
상훈은 잔뜩 질린 눈으로 안경을 벗어들어 옷에 대고 문질렀다. 침착하게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심하게 동요하는 눈동자와 안경을 쥐고있는 손의 경미한 떨림은 감출수 없는 모양이었다.
살인 장면을 목격한다는건 평생을 살아도 힘든 것이기에 모두에게 이 상황은 화가가 색맹이 되었을때
느낄법한 엄청난 쇼크가 아닐수 없었다.
"제가 보기엔 시신에 나타난 암적색의 시반으로 보아 적어도 살해당한지 4-5시간 이상은 된것
같은데요? 딱딱한 둔기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고 그 다음 팔을 잘라낸것 같아요."
(주 - 시반 : 혈액침하 현상으로 시체가 고정되어 있으면 적혈구가 중력에 의해 낮은곳으로 흘러
아랫쪽 모세혈관에 모여 붉은 반점을 이룬다.)
"끔찍하군요.. 그런데 팔은 뭘로 잘라냈을까요? 잘라냈다기보다 뜯어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만요."
료의 말대로라면 도우미는 모두가 한창 잠들어 있는 밤중에 살해됬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고 사방에 접시가 깨져있고 양념통이 떨어져있는등
난장판이였는데도 전혀 소란스러운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준수는 자꾸 떨어져나간 팔이 신경쓰였다. 단면적이 깨끗하지 못하고 심하게 너덜거리는것이
베어냈다는 생각보다는 강한 힘으로 뜯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토악질이 좀 가라앉았는지 입을 닦으며 거실로 나타난 동팔은 식당근처는 얼씬도 하지않고
쇼파에 털썩 주저앉아 큰 소리로 말했다.
"뭐가 좋은 거라고 다들 구경하고 있는거요? 대충 덮어두고 경찰에 신고부터 합시다!"
"제가 어제 핸드폰을 사용해봤지만 산장내에서는 전파가 닿지 않는 모양인지 안걸리더라구요."
준수가 동팔의 질문에 대답하며 걸어나오자 주저앉아있는 순화와 진주는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마지막 까지 남아서 시신을 살펴보던 료가 쓰레기를 담는 까만색 비닐봉지를 잘라
시체를 대충 가리고 나왔고 모두가 쇼파에 모여 앉았을때 삐그덕 소리를 내며 준호가 계단으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잠이 덜 깼는지 계속 눈을 비비고 있었지만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척 차갑다는걸 느낀 준호는 재빨리 다가와 쇼파에 앉았다.
"왜 그래요.. 무슨일 있나요?"
"준호아. 놀라지말고 잘 들어라.. 오늘 아침 도우미 아주머니가 식당에서 시체로 발견됬다."
"형!"
"사실이야. 그래서 우리는 빨리 의논을 해서 상황을 수습해야만 해."
준호는 믿을수 없다는듯 손으로 입을 막으며 몸을 일으켰다. 직접 식당으로가 확인을 하려는 모양.
준수는 그런 그의 손을 끌어당겨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보낸뒤에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러자 그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지켜보고 있었던 상훈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제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처럼 정말 이게 첫날의 미션이라면 누군가에게 메모가 도착하지
않았을까요? 제 방에서는 못본것 같은데.. 혹시 가지고 계신분 있으신가요?"
"나도 못본것 같은데?"
"제 방에도 없었어요."
다들 메모는 보지 못했다며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자 순화가 그들의 앞으로 조용히
팔을 내민후 쥐고있던 주먹을 펼쳐보였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위로 잔뜩 꼬깃꼬깃해진 하늘색의
메모지가 모습을 들어냈다.
"아직 안펴봤어요.. 펴보려고 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듯 인상을 찌푸리자 동팔은 잽싸게 메모를 나꿔채고 조심스럽게 펼쳐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메모의 내용을 읽어내려가는 동팔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그리고는 쿵- 소리를 내며 탁자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씨발.. 말도안되!"
"동팔씨 왜 그래요? 무슨 내용인지 말해봐요!"
"뭐 이런 말도안되는 미션이 다 있어!!"
"뭔데 그래요?"
"궁금하면 직접들 보쇼!!"
그가 흥분하며 메모를 던지자 다들 궁금했던지 한곳으로 모여들어 머리를 맞대고 앞 다투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산장의 비밀. 제 1장*
첫번째 주인공은 최 순화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본인의 이름을 확인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동반자로는 동팔 님이 선택되었습니다.
최 순화 님이 정답을 맞추지 못할경우 동팔 님께서는 12시간안에 살해당하게 될것입니다.
참고하시고 최선을 다해 미션을 수행해 주십시오.
*Mision = 살해된 도우미의 이름을 맞춰라.
*Hint = 그녀의 이름은 한글자의 성에 두 글자의 이름입니다. 한글 이름이 아닌 한자 이름입니다.
성 = 그녀가 살아있을때는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름= 식탁 위의 음식.
정답 제출시간은 오후 11시 30분부터 30분간입니다. 그 전에는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힌트와 설명을 드렸으니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Master. H-
"마스터 H라구? 미친거 아냐? 어떻게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름을 맞춰? 그것도 죽은 사람을!"
"아.. 예선이랍시고 보물찾기 시킬때부터 진작에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첫번째 미션이라며 그들에게 도착한 메모는 둔탁한 쇠파이프로 뒷통수를 한대 맞은것처럼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 상황이 미션이라면 살인동기를 맞추라던가.. 살인자를
맞추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살인에 사용된 도구를 맞추라던가.. 그런쪽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건 동팔이였다. 이 어이없는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죽는건 자신이였기 때문이다.
"그딴거 다 필요없구! 어짜피 말려들었으니 제발 문제좀 풀어주십쇼.. 맞추지 못하면 제가 죽는단
말입니다.. 빌어먹을!"
"형. 진정하세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다같이 문제를 풀어봐요."
"너 아직 식당에 안들어가봤지? 그럼 어디 한번 들어가봐! 그 여자가 어떤 꼴로 죽어있는지!
보지도 못한주제에 어린놈이 뭘 안다고 시덥지 않은 위로를 하는거야!"
자신의 이름이 살인명단에 오른것 하나만으로도 동팔은 이성을 잃은듯 죄없는 준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긴 했으나
두려움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순서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것이 아니므로.
한참을 혼자 미친사람처럼 날뛰던 동팔이 조금 잠잠해지자 펜뚜껑을 입으로 잘근잘근 씹고있던
료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야겠네요. 처음엔 저도 천만원이라는 상금때문에
참가했지만 상황을 보니 상금은 둘째치고 이곳에서 안전하게 살아남는것이 우선일것 같아요."
"저도 료씨 말에 동감합니다."
"전 하지 않겠어요. 그 시체를 다시 보느니 차라리 방문을 걸어잠그고 소설이나 쓰는편이 낫겠네요."
"이 여자가 이 판국에 소설을 쓰겠다구? 어디 그러기만 해봐. 당신 이름이 올랐을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테니까.. 오늘 내가 죽는다면 당신도 무사하진 못할꺼야!"
"너 나보다 나이도 어린것 같은데 어디서 반말이야!"
"자자.. 다들 진정하시구요.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다 함께 들어가는걸로 해요. 그리고 이준호군?"
"네. 료형"
"준호군은 아직 상황을 모르는것 같은데 같이 들어가겠어? 원하지 않으면 이곳에
남아도 괜찮아. 어린 사람이 보기엔 너무 끔찍한 살인현장이니까."
"아니에요. 저도 들어갈래요. 저 이래뵈도 기억력은 좋으니까 뭔가 도움이 될꺼에요."
"네. 그럼 다같이 들어가서 살펴보도록 하죠."
"근데 료형은 우리나라 말을 참 잘하시네요? 발음이 약간 불안정한게 흠이긴 하지만
어려운 한자 섞인 단어도 잘 구사하시구요."
"난 국적이 일본이긴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할아버지께 한국말을 배웠어. 그리고 일본도
한국과 같이 한자 문화권임을 잊지말라구~"
료는 생긴것 답지않게 침착하고 어른스러웠다.
준호는 너무 정확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료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이 닫혀져있던 식당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밀폐된 공간을 꽉 메우고 있던 비릿한 피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폭발하듯 밀려나왔다. 울렁거림이 다시 시작됬다.
모두들 선뜻 들어가지 않고 문 앞쪽에 몰려있자 준수가 앞장서 걸어들어갔고 뒤이어 들어온 료는
자신이 시체에 덮어놓은 까만 비닐봉지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준호는 흥건한 피와 시체를 보고 놀란듯 비틀거렸지만 잽싸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던 동팔보다는 훨씬 나은 반응이였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검을 눈물 글썽이며 바라보던 순화는 메모를 펼쳐들고 입을 열었다.
"우선 성부터 먼저 생각해봐요. 한글자니까 그나마 쉬울것 같네요."
"문제를 낸 인간도 정상이 아니라니까? 어떻게 이름을 맞춰!"
"동팔씨도 화만 낼게 아니라 어서 머리를 굴려봐요. 순화씨. 성의 힌트가 뭐였죠?"
"음.. 그녀가 살아있을때는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갖지 못한 것이라네요. 처음부터 막막하네...
이럴때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데.."
"순화씨. 그림은 왜죠?"
"상훈씨는 계속 저 시체와 같이 있고 싶어요? 저는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그러니까 이곳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가지고 나가서 상의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네요. 이중에서 그림좀 그려주실분 계신가요?"
순화의 제안에 상훈은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찾았으나 다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나 대충 그려가지고 나가면 될일이지만 정확히 해서 나쁠건 없다는 생각이였다.
그러자 시체의 팔이 신경쓰이는듯 뚫어지게 쳐다보던 준수가 말을 꺼냈다.
"그림이라면 제가 그려 드릴수 있지만 지금 여기에 종이가 없네요. 나가서 찾아볼까요?"
"준수형. 그럴 필요없어요. 제가 이곳의 상황은 다 기억했거든요. 그림은 나가서 그려요."
"이곳의 상황 전부?"
"네. 어제 우리가 식당에서 식사하던때에 물건의 위치. 그리고 지금 흩어진 물건의 위치.
식탁에 차려진 음식. 다 기억할수 있어요. 저도 여기 오래 있다보니 어지럽네요. 우리 나가서
상의해봐요."
"하지만 이곳에 중요한 힌트가 있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되. 여기서 그려가지고 나가자."
"절 믿으세요. 전 마음먹고 외운걸 한번도 잊은적이 없어요. 그러니 절 믿고 나가요. 네?"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그럼 내가 식탁이나 싱크대 같은 가구를 먼저 그릴테니까 넌 옆에서 세부적인 물건들의 위치를 알려줘."
"네. 알겠어요."
도살장 같은 식당을 벗어나 다시 거실로 모인 그들은 그림을 그리는 준수와 준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준수는 고급스러운 산장 내부에 어울리지 않게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달력을 찢어
뒷면에 식탁, 선반, 냉장고, 싱크대 같은 가구를 그려넣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건 아니였지만 그는 학창시절 애니메이션부의 서클장 이였을만큼 그림에 흥미가 많았다.
그가 팬을 바쁘게 움직여 대충 식당의 윤각을 잡아가자 준호가 바짝 다가앉아 물건의 위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식탁위에 있는 음식부터 말씀드릴께요. 각 자리마다 숟가락과 젓가락 물컵 북어국이 담긴 국그릇이
놓여있었어요. 겨자소스와 간장이 담긴 종지도 두개씩 있었구요. 제일 가운데에는 찌게가 담긴
전골 냄비가 있었고 냄비의 오른쪽에는 총각김치. 왼쪽에는 물김치가 있었어요. 근데..
왜 밤중에 음식을 차리고 있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또 다른 반찬은?"
"네. 총각김치 오른쪽에는 도미구이가 있었구요 그 옆에는 두부찜.. 그리고 왼쪽에는 콩나물 무침하고
콩자반이에요. 맞은편 물김치쪽에는 양옆으로 김하고..그게뭐였지? 하얀 흐물거리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거였는데.."
"아! 그건 아까 나도 봤어. 해파리 냉채였어."
"맞다! 해파리 냉채. 진주누나 고마워요. 해파리 냉채가 있었어요."
"이건 어떻게 그림으로 그릴수도 없겠다. 그냥 접시를 그려놓고 글로 써놓는수밖에.."
시체의 위치는 준수가 대충 기억하고 그려넣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토막난 시체를 그린다는것이
불쾌했는지 손을 멈칫하고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시체에서 빠져나온 얼룩진 피를 그려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 어제 식사때까지는 선반에 유리접시들이 가득했거든요? 그런데 오늘보니 식탁에 놓여진
숫자만큼 비는것 같았어요. 그리고 더 이상한건 어제 식사때 보였던 식기들이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점이에요."
"잘 씻어서 어딘가에 넣어뒀을수도 있잖아? 오늘은 한식이고 어제는 양식이였으니까."
"그런가요? 하지만 제가 수납장마다 다 열어서 확인했는데 안보이더라구요."
"다른 것들이랑 착각했겠지. 그릇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잖아."
"하지만.. 어제 봤던 그릇들은 아무런 무늬없이 하얀 도자기들이였는데.."
대충 그림이 다 완성되고 그들은 그림앞에 옹기종이 모여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준호는 턱에 손을 괴고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고 준수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세세한것까지 기억을 하지?
준수는 평범하지 않아보이는 소년을 마음에 둔채 사람들의 대화속에 끼어들었다. 성부터 해결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상훈과 진주가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어짜피 성은 죽은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는것이라고 했죠? 그럼 피를 의미하는게 아닐까요?"
"피요?"
"네. 료씨에 말대로라면 아주머니가 죽은 결정적 이유는 팔이 잘려나가 과다출혈을 일으켰기 때문이
잖아요? 머리를 맞은건 죽을 정도는 아니였다고 하니까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피가 성과 무슨 관련이 있죠?"
"우리 나라에 피라는 성이 있잖아요."
"에이.. 설마요.."
"상훈씨는 공부만 하고 다른쪽에는 둔하신가보죠? 유명한 수필작가 피천득님도 모르세요?"
"네네~ 둔해서 죄송하네요."
진주는 생긴것 답게 말할때면 언제나 톡톡 쏘고 비아냥거렸다. 모두들 그녀의 말투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 관심 없는듯했다. 단체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였다.
그때 동팔이 뭔가 떠올랐다는듯 손바닥을 마주치며 일어났다.
"피라는 성도 나름대로 말은 되지만 다른쪽으로도 생각해봅시다. 아주머니가 손에 칼을 쥐고
죽었잖아요. 살아있을때는 음식을 만드느라 칼을 쥐고있다가 그대로 팔이 잘려나간거구요.
그러니까 살아있을때는 들고있던 칼이 팔과 함께 잘려 나갔으니까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 거잖아요?"
정답은 칼이에요!"
"칼이 성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거죠?"
"순화씨도 묻지만 말고 생각을 해봐요. 칼을 한자로 하면 뭐가 되죠?"
"아! 칼 도(刀)!"
"네. 바로 그거에요. 아주머니의 성은 도씨가 되는거죠."
제법 머리를 굴린듯한 답이 나오자 모두들 일리가 있다는듯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런식으로 한자에 대입시키면 생각보다 쉽게 답에 접근할수 있어보였다.
하지만 상훈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동팔씨 의견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힌트를 보면 죽기전에 잠깐 가지고 있었던게 아니라
쭉 가지고 있다가 죽은후 잃은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음식을 만들고 있었으니 칼을 들고
있었던거지만 범인에게 저항하기 위해 일부러 집어든걸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상훈씨 의견은 뭐란 말입니까?"
"저는 칼이 함정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것으로 시선을 분산시켜 혼란을 주려는것 같다는 말이죠."
"그럼 빨리 다른 의견을 내봐요! 당신은 한가하겠지만 난 맞추지 못하면 죽는단 말요!"
"칼을 들고 있는 팔.. 잘려나간 팔.. 저는 그게 답이라고 예상해요."
"팔이요?"
"네. 팔이라는 성은 없으니까 성에 알맞게 대입해보면 그녀의 성은 손 이 아닐까요?"
"아!"
"손이라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고 잘려나갔기에 잃어버린 것이니까요."
상훈의 그럴듯한 의견에 다들 동감하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어려운 문제라 난감해하는듯 했으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니 조금씩이지만 실마리가
잡히는듯해 눈에 생기가 돌았다.
상훈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지은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짜피 답을 입력할수 있는 시간이 30분이나 있으므로 성은 도씨나 손씨로 결정하고 오답인 경우
바꿔 써넣는것으로 해요. 이제 이름이 문제인데..힌트가 식탁위에 있는 음식이였던가요?"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산장에 도착해서 들은 황당한 기계음때문에
다들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가 피곤함에 지쳐 밤새 잠만 잤고 아침에도 식당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까닭에 그들은 심한 허기를 느꼈다.
하지만 피로 얼룩진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기에 다들 잠자코 있었다.
준호는 준수가 쓰던 펜을 들어 음식의 이름을 이것저것 조합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이름과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시간은 벌써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아.. 배고파 돌아버리겠네!"
점심때를 넘기자 드디어 폭발한 동팔은 앉아있지 못하고 쿵쿵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자 순화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 가더니 가방속에 있던 감자칩 한봉지를 꺼내와 동팔에게
건냈다. 자신이 답을 맞추지 못하면 동팔이 피해를 입게 될꺼라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감자칩 한봉지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음식과 이름과의 연관성을 못찾겠어요. 성처럼 쉬운게 아닌가봐요."
"자꾸 시간은 가고 배고프니 집중은 안되고.. 미치겠네요."
"제가 들어가서 냉장고에 먹을만한게 있나 보고 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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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주방으로 걸어들어가더니 포도 쥬스 두병과 아이스크림 한통
사과 몇개를 가지고 나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배고팠던지 그가 가지고 나온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준수는 포도쥬스를 들이키며 쇼파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있는 준호에게 사과를 건냈다.
"먹어. 뭐라도 먹어야 살아."
"못먹겠어요.."
"그래도 먹어! 지켜달라며? 무슨일이 있어도 너 하나는 지킬테니까 굶어죽기전에 먹어!"
준호는 준수의 말에 가만히 사과를 받아들고 한입 베어물었다. 시큼한 과즙이 입안을 맴돈다.
다들 대충 허기를 달래고 다시 이름을 찾기위해 그림에 매달렸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나 정말 죽는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음식을 보고 이름을 맞추라는건지 모르겠네요."
"돌아버리겠네!'
"콩나물 무침. 북어국.. 이딴걸로 어떻게 이름을 맞추라는거야.."
다들 밑도 끝도 없는 문제 때문에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음식 이름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였다. 그렇다고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에 도미나 북어같은
이름을 써넣을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두통이 일어나는지 양쪽 관자놀이를 계속 누르고 있던 료가 벌떡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잠깐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가 올께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러지말고 우선 다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시 쉬는게 어떨까요? 떠오르지도 않는
답을 억지로 생각하다간 머리부터 이상해지겠어요."
"그래요. 상훈씨 말대로 잠시 쉬면서 생각해봐요. 아직 시간은 남아있으니까요. 혹시 알아요? 조용히
생각해보면 떠오를지 말이에요."
다들 상훈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팔은 정신불안증을 보이며 초초해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을 계속 잡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순순히 그들의 말에 따랐다.
준수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다 포기했는지 머리맡에 놓여있는 mp3를 집어 이어폰을 귀에 대고 재생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이였다.
"이 손 놓고 천천히 이야기해요!"
귀에 익은 비명소리가 벽을 타고 뇌리에 직접 파고들어 옴을 느낀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달려나갔다. 소리가 나는곳은 준호의 방이였다. 안좋은 일을 직감한듯 심장은 거칠게 요동했다.
"이준호! 무슨일이야!"
준수가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반쯤 눈이 뒤집힌 동팔이 준호의 두 손을 잡고 침대에 밀어붙인뒤
상의를 벗기고 미친듯이 입술을 들이대고 있었다.
"어짜피 난 죽어! 오늘 밤에 죽을꺼야!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자는데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형! 동팔씨가 이상해요!"
준수는 그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곧바로 뛰어가 동팔의 어깨를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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