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풋풋한 시절 같은과 CC 여학생과 두달정도 사귀고 차였다.
처음 겪어보는 우울한 마음 어찌할바 몰라 휴학을 신청하고 바로 102보충대로 입대를 하게 되었다.
지독한 골초였고, 철부지였던 나에게 군대의 가두리는 너무 가혹했고, 화생방, 행군 너무 힘들었다
G.O.P 사단으로 배치를 받고 한 중대로 들어가게 된다.
매일 엄마 목소리가 듣고싶었다. '엄마 밥먹었어?' '엄마 뭐해?' 나는 매일매일 엄마에게 전화했고 너무 힘들었다.
매일마다 조인트 까이고, 세탁기가 있지만 이등병은 손빨래를 해야 했고, PX도 못갔고, 연초도 매달 뺏기고...
제일 힘든것은 코골이였다.
나는 지독한 코골이다. 한번 골면 윗집에서 찾아올정도이다.
매일마다 다른 분대에서 베개가 날라왔고 매일마다 욕이 난무했다.
밤마다 너무 힘들고 지쳤다.
나에게 후임병들이 꽤나 생겼다. 이것저것 챙겨주고 내무부조리가 있지만 후임병들과 으쌰으쌰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후임병과의 고민상담... 너무 힘들어했다. 나이도 많고 스펙도 매우 좋은 친구였다.
눈빛도 많이 달라졌고, 행동도 예전같지 않고 기가 죽어 있다.
연대가 발칵 뒤집혔다. 고민상담했던 후임병이 지금까지 있던 부조리를 에이포용지 3장 빼곡히 작성해서 연대장에게 제출한 모양이다. 문제가 있던 선임병들은 영창, 전출등 조치가 이루어 졌고, 피해자였던 나조차도 근신3일이라는 징계가 주어졌다.
문제가 있었던 우리소대와 다른소대가 섞여져 버렸고, 나는 다른 소대장과 군생활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
우리소대는 1년동안 전방에 들어가게 되었고, 바뀐 소대에서 군번이 풀려 분대장이 되었다.
전방에서의 생활은 무척이나 편했고 좋았던...것도 잠시
내 직속후임.. 바뀐소대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갔던 친구.. 나에게 바둑을 알려줬던 머리가 비상했던 친구의 탄약고에서의
자살소식이 들려졌다. K1소총으로 자기 턱과 목 사이를 쏴버렸다고 들었다.
후임의 분대장은 불구속 입건이 되었고, 같이 근무를 서던 후임병은 정신이 이상해졌다.
그렇게 또한번 중대가 발칵 뒤집혔고 진급전이였던 중대장은 대위의 계급으로 군생활을 마쳐야 했다.
1년 후 다시 연대로 내려왔고, 병장이였던 나는 다리가 땡기고 잘 앉지 못하겠는 이상한 병이 걸리게 된다.
병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단의무대에 나가지 못해보고 전역하게 된다.
진단명은 추간판 탈출증, 일명 허리디스크
나는 전역 후 곧바로 허리 수술을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남자는 꼭 군대를 가야하고 안가면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생긴다면... 될수만 있다면 군대는 안보내고 싶다.
우리 나라가 주변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섬나라이거나 정신 제대로 박힌 순한 나라에 둘러쌓인 서유럽 어디쯤 아닌 이상 징병제를 사수해야 하고, 단 6개월을 하더라도 군생활을 해야 하며, 예비군인 모든 남성은 순식간에 정규군으로 편제되어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상무정신을 길러야 함. 이 나라는 반드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일을 당하게 되어 있는 자리임. 돈을 받은 몇몇의 사람이 나라를 지킨다는 사고방식이 국민들 머리 속에 일반화되어 박히는 날 국방, 안보는 백척간두에 서게 됨. 나라는 군인이 지키는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지키는 것임.
수십번 맞았습니다.
입대 후 처음으로 눈물나더이다...
나도 난생처음 군대에서 코고는새끼 코냅따후두려 패버림 ㅋㅋ 진짜 천사도 악마로만들어버림
설마 하고 싶은건 다하고 군대만 안보내고 싶은 그런 마음은 아니겠지요?
송병장. 잘사냐
이유가 지 속옷 안챙겼다고..ㅎ
사람을 어찌 야삽으로
때리냐.
그러나 휴전국가이므로 다시
군대가라면 다시 갈란다.
왜 후임들한테 잘해주냐며 날 때리곤 했지?
지금은 뭐하고 살까 모르겠지만 나이 먹어서도 그러고 살진 않았으면 한다.
어차피 다 거기에 적응하고 사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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