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산군 원년
윤산군은 본래 문조의 발탁을 받고 문조를 따르던 신하로 포도대장 노릇을 하던 자인데, 망나니가 쓰는 큰 칼을 잘 썼고
그 덩치가 또한 매우 컸다.
서서 걷자니 비대한 몸통이 크게 흔들리고, 앉아 있자니 다리가 절로 벌어지곤 하였다. 이를 본 사람들이 윤산군을 별칭으로 멧돼지 혹은 쩍벌이라 불렀다.
그런데 윤산군은 엉뚱한 야심을 품고
문조를 참람되게 비방하였고
문조의 수하인 법부대신 국이란 자를 노리고 사소한 트집을 잡아 잔혹하게 멸문지화 시키는 모습을 보여 정의로운 척 혹세무민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거짓된 모습에 현혹되어 윤산군을 칭송할 때 오직 한 사람,
계양군만은 윤산군의 검은 속을 꿰뚫고
윤산군이 왕이 되면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윤산군은 의인 행세를 집요하게 하였으며, 끝내 백성을 속이고 민심을 가로채어 기어이 왕이 되었다.
5월
윤산군이 즉위하자마자 경제가 파탄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니 길거리의 백성치고 윤산군을 원망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윤산군은 북악산 아래의 옛 궁터를 버리고 굳이 고집을 부려 용산에 올라서 집무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 까닭을 알 수 없으므로 오직 추측만이 구구하였다.
윤산군이 법부대신 동훈을 비롯하여 포도대장 시절 친하던 당여를 곳곳의 요직에 배치하니 재야의 선비들이 뒷조사를 당할까 봐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7월
윤산군의 수하들이 윤산군의 즉위에 도움을 준 젊은 이등공신 준석을 끌어내 무릎꿇려 문초하고 가혹하게 징벌하니
윤산군의 당여에 속한 젊은 선비들이 크게 실망하여 마침내 윤산군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말하기를 "이는 토끼를 잡고 사냥개를 삶아먹는 것이다. 한나라 고조를 위한 한신이 회음후로 강등된 끝에 저렇게 죽었겠구나"라고 하였다.
이에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잠시 일어났던 윤산군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봄눈 녹듯 모두 사라졌다.
천공선생과 건진법사를 비롯한 무리가 요설로 나라를 휘젓고 다니니 백성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아니하였다.
윤산군은 즉위 전에 스스로 자신하여
"나는 당여를 따르지 않는 백성인 무당파의 마음을 얻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이는 필시 무당의 마음을 얻었음을 가지고 잘못 일컬음이다"라고 비웃었다.
8월
준석이 숙청된 후 강릉의 권씨와 부산포의 장씨가 위세를 부리고 다니니 그 횡포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백성들이 간신배를 가리키는 말로 '강권부장'이라 수군거렸다.
조정에서 어린아이들을 강제로 일찍 학교에 보내려고 획책하다가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에 백성들이 책임을 묻고 따지기 위해 몰려들자 크게 놀란 학부대신 순애는 신발 한 짝이 벗겨진 채 내달려 멀리 달아났다. 불에 기름을 붓듯 민심이 크게 어지러워지자 더 버티지 못한 순애가 결국 물러났다.
큰 물난리가 나서 도성이 물에 잠기고 떠내려가는 자, 갇혀 죽는 자가 속출하니 윤산군을 미워하는 자들이 전국 방방곡곡 가득하였다.
9월
법부대신 동훈이 날로 포악해져 뜻있는 재야 선비들을 감시하니 뭇 백성과 선비가 두려움에 떨었다.
한편 윤산군의 왕비 김씨는 본래 성품이 괄괄하고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기로 이름난 자인데, 공손히 내조를 하겠다면서 굳이 '공내왕후'라 자처하였고 스스로 그리 불리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리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하나같이 모두 "그 좁은 도량과 가벼운 성정은 칭호로써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김씨를 비웃어 마지않았다.
윤산군은 왕위를 두고 경합하던 유력자인
계양군을 매우 경계하였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를 "이는 계양군의 능력이 절륜함을 윤산군이 시샘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윤산군의 측근들이 계양군을 견제하고자 계양군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으나 별로 나오는 것이 없으므로 그 흉측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윤산군이 자못 위세를 과시하며 바다 건너 이역만리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구라파 순방에서는 길이 막혀 허둥대다가 영국 여왕의 관에 참배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미국 순방에서는 미국 우두머리에게 홀대받은 뒤 분을 이기지 못하여 뒤돌아서 욕설을 뱉다가 들켜 큰 망신을 당하였다.
이에 나라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니 백성이 모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10월
백성들이 차차 명군 문조를 그리워하였다. 그러나 퇴위하고 나서 흰 수염을 기른 문조는 차 한 잔을 곁들여 고양이 한 마리와 노닐 뿐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국법 또한 물러난 임금이 다시 즉위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윤산군은 옛 주인인 문조를 가혹하게 뒷조사하는 한편, 계양군을 못살게 굴어서 난국을 타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독한 처방을 썼음에도 이미 민심이 악화되어 있어 별다른 효험이 없었다.
12월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흡사 벌떼와 같이 일어서니 끝내 천하가 뒤집히고 윤산군이 폐위되었다. 백성을 주인으로 섬기는 뜻있는 선비 당여들이 모여서 왕위를 이을 사람을 논의하였다.
몇 사람이 나서서 구태여 문조 때 재상을 지낸 영광군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영광군이 국가의 일을 돌보기에는 너무 늙고 기력이 쇠하였다 하여 다른 이들이 격렬히 반대하였다.
이에 정책 공부에 전념하던 계양군이 추대받아 왕위에 올랐는데 민생에 정통하여 백성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었고 일처리를 할 때 그 공정함이 칼과 같았다.
세상을 빛내었다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 시호를 명조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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