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둘러싼 풍운조화
한국의 고유한 식문화인 김치를 도둑질해 가려는 이웃에 대한 방송이 전파를 탔다. 2021년 2월 27일에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277회에서는 ‘김치도둑과 전파공정’ 편이 방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중국이 김치가 자기네 것이고, 한국이 도둑질해 갔다는 황당한 주장을 시작으로 한복, 설날, 태극기를 넘어서서 한자만 적혀 있으면 모든 것이 중국의 문화라는 어이없는 내용의 중국 주장들이 소개 되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이 단순한 우스개 소리 수준이 아니라 중국 정부 주관으로 공산당과 민간 명사名士(influencer), 댓글 부대 등이 연합하여 다방면으로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동북공정을 넘어 중화문명 전파공정 차원에서 실행 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지금은 역사 대전쟁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때마다 항상 서두에 말씀하시는 그 쟁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 역사전쟁의 엄중한 상황에서 정말로 김치가 풍운조화를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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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일본은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반 도체 소재 3종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한다 고 발표했다. 그로 인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 ‘NO JAPAN’이 시작됐고, 헬조선을 토로하며 환빠, 국뽕을 조롱하던 정서가 며칠 만에 역 사의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정서로 전환되 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김치전쟁을 시작으로 조선구마사 사태(역사 왜곡 사극)까지 현재 벌 어지고 있는 상황들은 중국의 역사문화 도둑 질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에서 나아가 한국 국민들을 깨어나게 하고 있다.
김치 도둑 논란의 시작
중국의 누리꾼들은 최근 김치의 원조는 중국 이며, 한국이 김치를 훔쳐간 김치 도적국이라 는 글을 집요하게 올리고 있다. SNS에 ‘ # 한국문 화도둑’이라는 해시태그 운동도 벌이고 있다. 김치 전쟁 사태를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2021년 1월 9일 중국 유튜버 리즈치의 김치 영상이 SNS에 올라온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완성된 김치로 김치찌개도 끓 인다. 구독자는 1,450만 명, 김치 영상에는 중 국 음식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다.
한편 한국 유튜버 햄지는 중국에서도 인기 있 는 유튜버였다. 농림부와 함께 김장 영상을 공 개했다가 중국 SNS에 등장해 사과 방송을 한 다. “우선 중국분들에 대해 비속어로 단어가 들어가 있는 댓글에 제가 ‘좋아요’를 눌렀어요. 우선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댓글은 이런 내용이다. “아 이거 보니까 또 열 받네. 중국 놈들이 이젠 쌈도 지네 전통문화라고 하고 있던데.” 중국 유튜버들이 쌈 문화도 자기들 거라고 올려놓은 영상을 보고 화가 난 한국 네티즌의 댓글인데, 여기에 좋아요를 누 른 것이다. 이 내용이 중국 포털 실시간 검색 어 1위에 올랐다. 그 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댓 글이 달린다.
“너희는 조선의 이름을 누가 줬는지 아냐?”
“중국인이 한국인을 발명했다.”
“도둑국 안녕하세요.”
“김치는 중국 전통 음식이고,
한국은 김치 도둑 이다.”
“파오차이를 변형시켜 김치를 만든 것이다.
조선 족은 중국 소수민족인데 조선족이 김치를 먹기 때문에 중국의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황당하게도 “김치가 한국 음식이라는 말은 중국에 대한 모욕”이라는 말을 하는데, 특히 모욕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파오차이가 김치라고?
파오차이는 얼마 전 ISO(국제 표준화 기구)에서 제조법을 인 증받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 환구시보가 이 인증 소식을 전하면서 마치 한국 김치는 인 증을 받지 못한 것처럼 ‘김치 종 주국 한국의 굴욕’이라는 제목 을 단다. 이런 영향으로 국내 네 티즌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난 다. 피클 맛에 가까운 파오차이 가 조리법도 전혀 다른 김치의 원조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 작한다.
우리 김치가 인증받은 Codex(국제 식품 규격 위원회) 는 국제 규격인데, 중국이 파오 차이 인증을 받은 ISO는 민간 단체 규격 이다. 우리나라의 농 림축산식품부 트위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중국의 파 오차이는 우리나라의 김치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파오차 이가 기재된 ISO/FDIS 24220 문서에 ‘이 문서에는 김치가 적 용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대응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이 열렸는데 한국 에서 김치 관련 행사를 했다. 당시 중국 공산 당 기관지는 “한국이 남아공 월드컵을 틈타 쓰촨 파오차이를 모방했다”는 기사를 낸다.
그때 쓰촨성 농무청의 고위급 간부가 “한국이 김 치 광고를 했는데 그 항아리는 쓰촨 것이다”는 말 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쓰촨성 안의 메이 샨이라는 도시에 파오차이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 고요. 파오차이 생산 기업들을 조직해서 공업협회 를 만들었습니다.
모종혁 중국 전문 비디오저널 리스트, 스포트라이트 중
누가 봐도 전혀 다른 항아리를 가지고 우기는 정도 수준이라고 봤겠지만 중국은 굉장히 치 밀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현재 중국 식단에는 우리 김치가 들어가는 요 리에는 모두 파오차이라고 되어 있다. 용어만 보면 김치가 파오차이의 한 종류로 인식 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우리 정부 부처가 빌미를 줬다. 농림부에서 중국인들이 ‘기’자 발음을 하기 어려운 점 때문에 ‘신치’라는 이름을 추진 하고 있었는데, 문체부에서 만든 중국어 표준 에는 2013년에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표시해 놨고, 2014년에는 표기를 공란으로 해 놨다. 김치와 파오차이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있 는 셈이다.
이런 시기에 UN 주재 중국 대사 장쥔은 SNS 에 김장 담그는 사진을 올리고 “겨울 생활도 다채롭고 즐거울 수 있다. 한 가지 선택은 손수 가정식 김치를 담그는 것이다.” 라는 글 을 올린 다. 한국 문화 지킴이로 유명한 서경덕 성신여 대 교수는 ‘중국 정부 계정’으로 운영되는 트위 터에 마치 김치가 중국 문화인 것처럼 김치를 만드는 사진을 올려 논란을 야기한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다.
서 교수는 서한에서 “그동안 중국의 외교적 성과 를 홍보하는 창구로 쓰이던 장 대사 SNS에 느 닷없이 김치를 홍보하는 글을 올린 건 속 보이 는 행동” 이라고 지적했다.
서경덕 교수는 2021년 1월 18일 뉴욕타임스 전 세계판에 김치 광고를 게재했다.
<한국의 김치, 세계인을 위한 것>이라는 제목 아래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으로 등재됐다.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한국의 대표 음식 문화로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마지막 문구에서는 ‘현재는 세계인들이 사랑 하는 발효 식품으로 자리매김했고, 한국의 김치는 전 세계인의 것이 됐다.’라고 강조했습니다.
- 서경 덕 트위터 글 내용
‘한국=속국’이라는 중국 내 정서
그런데 김치 도둑 논쟁 이면에 동북공정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공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 지 난해 가수 이효리가 MBC 예능 〈놀면 뭐하니〉 에서 자신의 부캐를 “마오 어때요?”라고 했다 가 중국 네티즌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며 결국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한 일이 있었다.
한 달 뒤 BTS는 한미 친선에 기여한 공로로 ‘밴플 리트상’을 수상했다. 리더 RM(본명 김남준)은 수상 소감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 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 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누리꾼은 수상 소감 중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부 분에 분노를 표했다고 환구시보는 전했다.
그러면서 SNS에 이런 글이 올라온다. “북한 이 한국을 침략한 것이 아니라 내전이었다.” 이 글을 공유하라며 올린 주체는 중국 공산주 의청년단, 공청단이다. 더 심하게는 왜 중국을 존중하지 않느냐는 말로 본국이 속국에게 하 는 것 같은 말을 한다. 남침으로 시작된 6.25 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 됐는데 중국의 국가 존엄을 무시했다니 이 무 슨 말인가?
우리의 한복, 갓, 매듭 등 전방위에서 문화 도 둑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일반 중국인들에게 물어도 이런 문화가 중 국이 근원이고 한국 사람들이 사과하고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한다.
한국인들이 당황스러운 것은, 중국 네티즌들 이 “중국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거나 “역사를 제대로 알라.”고 분노하는 것이 어이가 없기 때 문이다. 대체 무엇이 예의에 어긋난 것이고, 어 떻게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일까?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이라는 책 을 쓴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말 에 어느 정도 답이 보인다.
‘분노청년’은 중국에서 온라인을 이용해 “맹목적 으로 애국하고 광적으로 외국을 배척하고, 자유 주의적 지식인을 공격하는” 청년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 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혁명 당시 홍 위병이다.
홍위병이 마오쩌둥毛澤東의 권력을 위해 이용당했듯, 이들은 중국 공산당에 이용당하고 있다. 홍위병의 사상적 무기가 사회주의라면, 이들 은 애국주의다. 홍위병은 자산계급을, 분노청년 은 외국을 공격한다. 이들을 아우르는 것은 중화 주의다. 이들은 모두 서양을 비판하고 중국이 세 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분노청년은 중국은 위대한 고대 문명을 갖고 있으며 사회주의 대국인데 세상이 중국을 존경하지 않고 원하는 대 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 한다. 이들은 90년대 이후 출생자로 고학력층도 많고 한류에 익숙한 세 대다. 그래서 애국주의 교육과 팬덤 문화가 기묘하 게 뒤섞여 있다. 팬덤*의 대상은 시진핑, 민족, 국가 가 됐다.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저 자 김인회 인터뷰
*팬덤fandom : ‘광신자’를 뜻하는 영어 ‘fanatic의 fan’과 ‘영지領 地 또는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
1989년 천안문 사건의 충격 이후 공산당은 같 은 사태를 막기 위해 강력한 애국주의 교육과 운동을 벌였다. 이런 교육을 받은 중국 학생 들은 외국에 대해 비이성적·감정적·극단적 성 향을 갖게 됐다. 서양 제국주의 침략을 강조하 고, 위대한 고대와 굴욕적 근대에 대한 기억이 청소년들 마음속에서 극도의 분노를 유발하고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악마화하게 됐다 고 한다.
6·25 전쟁도 ‘자신들이 미국으로부터 한반도를 구해 준 전쟁’이라고 교육받는다. 여기까지만 봐도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중국이 아니다. 이들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세계시장에서 한류가 주목받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과거사 문제로 일본도 미 워하지만 최근엔 한국을 더 싫어하는 것 같다. 홍콩 시위에 지지를 보낸 것에 대해서도 분노 한다. 이들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생각은 ‘한국=속국’이라는 정서 이다.
중국영화 ‘전랑’戰狼(Wolf Warrior)은 애국주 의로 큰 인기를 끌며 2, 3편까지 개봉했다. 끝 까지 쫓아가 물어뜯는 늑대의 이미지를 내세 운 이 영화는 시진핑 외교의 상징이 되었는데, 거 칠게 물어뜯어 원하는 것을 얻어 낸다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 사’로 부른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공청단
중국의 이 ‘분노청년’ 세대가 조직적으로 양성 된 곳이 공청단 이라고 볼 수 있다.
공청단 홈페이지 www.ccyl.org.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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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중국 공산당을 배양하는 청년 조직입니다. 요즘 문화 논쟁을 보면 아시겠지만 중국의 젊은 네 티즌들, 2000년 이후에 출생한 친구들이 주로 전 면에 나서서 움직이지 않습니까?
- 강준영 한국외 대 국제대학원 교수
공청단, 즉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문화 전쟁 전면에 등장했다. 꼬마 공산당으로도 불리는 공청단은 14세부터 28세까지 청년 교육과 정 치 선전을 담당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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