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이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등에서 장교 생활을 경험한 한국인 군경력자를 대상으로 영어를 교육한 학교로 현재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이다. 졸업자들은 국방경비대 참위[1]로 임관했다.
미군정 초대 국방사령관이었던 미 육군중장 L.E. 쉬크 장군의 지시로 통역관 및 군간부요원 확보를 위해 1945년 12월 5일에 개교하였다.
먼저 '경찰예비대'를 창설 준비를 영어에 능통한 만주군 출신 원용덕에게 요청했다. 그는 이응준 등 사설 군사단체의 간부들을 모와 1945년 11월 20일에 미군정청에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결과 좌익계는 제안에 거부한다며 장내를 빠져나갔고, 자신들만이 국군이 될것이라고 생각한 광복군계도 거부하였다. 결국 만주군관학교 대선배 원용덕과 일본육사 대선배인 이응준 둘이서 면접을 보아 군사영어학교 학생을 뽑아 '경찰예비대' 창설을 준비하였고 이는 국군 창설로 이어졌다.
조선인 일본 육군 출신자는 39만 명이라는 대병력인 데 비해, 광복군 출신자는 일본군에 복무하다가 도망친 사람까지 합쳐서 3만 5천 명밖에 안 되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입장이었고 광복군 역시 그대로 한국군을 창설할 예비 단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110명의 교육수료자 가운데 87명은 일본군 출신이었고(일본육군사관학교 13명, 학병 68명, 조선지원병 6명, 관련기사 )[3] 21명은 만주군(만주국육군군관학교, 간도특설대), 2명은 광복군/중국군(이성가, 유해준)[4]결국 110명 중 108명이 일본군이나 만주군에서 장교로 근무한 이들이었다. 광복군은 단 두명.
그냥 쉽게 나무위키만 찾아봐도 현 사태의 원인을 알수 있네요....
첫 단추부터 잘못끼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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