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환히 웃는 엄마 얼굴 앞에서 상주가 된 내가 술을 한잔 올리고 있습니다
2월 4일 밤 10시 즈음 그때가 눈에 비치는 것 같아요
우리 엄마는 또 술을 마셨습니다
새해지만 이제는 금주니 뭐니 빈말도 꺼내지를 않습니다
나도 그런 꼴이 퍽 보기 싫어 방문을 닫고 문을 잠궜습니다
우리 집은 빌라에 복층입니다
방음이 잘 안되고 집이 커 소리가 울립니다
돈도 없으면서 왜 이리 큰 집에 월세로 왔냐 물으면
내가 좁은 방에 하루 왠종일 틀어박혀 있는게 불쌍해 보였답니다
술을 마시고는 하는 말이 어릴 때 본인이 살던
가난한 집에 바퀴벌레 나오고 벽지엔 곰팡이가 피어올라 있던 본인처럼은
살게 하기 싫다 했습니다
차도 팔고 돈을 티끌까지 끌어모아
복층에 야외 테라스가 있는 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막상 내가 보기 싫었던 꼴은 우리 엄마였습니다
내가 어릴 때 아빠와 이혼하고는
술만 마시면 저를 때리던 우리 엄마가 마흔이 다 되어서는
저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무시했고 경멸하듯 눈빛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나를 언젠가는 포기할 줄 알았는데
애석하게도 우리 엄마는 날 포기하질 않았습니다
가끔은 화를 내고 내게 무릎을 꿇고 친구처럼 대하고 어린 애처럼 생떼를 부리는데
그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무시했고 엄마가 내게 화를 내며 손을 올리는 날에는
나도 욕짓거릴 토했고 손찌검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그러기가 싫었습니다
지쳤던 거였는지 동정한 거였는지 알 수도 없지만
그냥 집을 나왔습니다
그대로 하룻밤을 친구네 집에서 보낸 후 할머니댁으로 쫒기듯 왔습니다
거의 열흘입니다
그 얼굴이 미치게 보기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로 집에 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내 인생을 어린 나이에 무모하게 빚어내고
잘 살던 내 친아빠에게 넘기지도 않고는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이상하답니다
할머니 전화는 그래도 꼬박꼬박 받던 엄마가
일주일 가까이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데
나는 그 순간 감이 왔습니다
우리 엄마가 죽었구나
할머니는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곤
제가 할머니네 온 지 열흘째 되던 날에 우리 집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저도 따라 갔습니다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습니다
엄마는 내가 아니라면 자살하지 않았을 거니까
내가 죽인 게 맞으니
우리 엄마의 죽음을 처음으로 보는 사람도,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도
내가 되고 싶다고 바랬습니다
소설 모비딕의 고래잡이 배처럼 난 우리 엄마라는 고래에 종속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기 싫었던 얼굴이고 인간이지만
나는 어느샌가 내 엄마에게 묶여 엄마의 아종이 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할아버지한테 참 많이 맞고 자랐다고,
엄마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머니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 모비딕과 정말 닮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현관을 열었습니다
악취가 뿜어져 나옵니다
분명히 난 각오를 했는데도 어디선지 모를 불안감이 생깁니다
그런데도 난 우리 엄마의 시체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긴 엄마 방의 방문을 젓가락으로 땄습니다
테이프로 방문이 꽁꽁 묶여 있습니다
그 사이로 우리 엄마의 파랗게 질리고 부어오른 허벅지가 보입니다
악취가 너무 심했고 할머니는 울고 계셨습니다
근데 난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악취 때문인지 방문을 마저 열고
고댸하던 시신을 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무릇 위층엔 시체 썩는 냄새가 아니라
내가 원래 살던 집의 내음이 나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냄새가 옅어져서 더욱이 불쾌합니다
무슨 짓을 해도 내 인생에서 엄마를 지울 수 없다는 듯이
묵지근하게 남은 썩은내에 구역질이 났습니다
지금은 1시 14분입니다
새벽인지라 조문객 분들은 전부 가시고
저와 할머니, 친척 한분만이 남았습니다
이제서야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상의 날개에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나는 이제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저는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부모라는 종속이 달아준 다리와 날개를 달고
미래를 향해 날아갑니다
근데 그동안 나는 한짝뿐이고 그마저도 불완전한 종속에게 내 헤지고 부서지고
만들어지다 말아서 뼈대가 훤히 드러난 나의 미성숙한 날개를
나의 혈육이라는 고래를 쫒느라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고래는 사실 허상이었습니다
고래인줄 알았던 나의 목표는
그저 또한 고래를 잡고 싶어했던 다른 쪽배에 불과했습니다
그 쪽배가 본건 진짜 고래일까요?
이상의 13인의 아해와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고래를 잡으려 했던 열 세척, 보다 많을 수도 있을 배들 중에
고래가 있긴 할까요?
아니라면, 고래가 아닌 것이 있긴 할까요?
내일은 화장을 합니다
나는 고아가 되었고 부서진 날개로 다시 날기만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죽은 누군가를 원망할 용기가 없어서 애꿏은 사물을 탓합니다
진짜 미치겠네요
난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먼훗날 같은곳에 갈때 엄마 아들 후회없이 살았다고 전해주세요.
어머니 잘 보내드리고 아버지께 가서
자신 인생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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