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싸우다 보면 가끔은 왜 싸우게 됐는지를 잊는 경우도 있고, 뒤돌아보면 다시 원점으로 가는 길이 너무 먼 경우도 있다. 지금 의정 갈등 상황이 그렇다. 이번 모든 일의 발단은 의료 개혁이라는 명분이 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2000명 정책이 발표된 후의 현실은 참혹하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죽였다.”
어마어마한 제정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전공의에게는 100만원 정도의 수당을 줄 것이다. 등등의 인심 성 정책을 발표하지만, 기차는 떠났다. 준비없이 기차를 출발시킨 것은 정부였다. 기차가 출발하려 기적을 울리면, 정신없이 사람들이 동조하며 탈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계획은 있었을 것이다.반발을 대비한 청사진도 있었을 것이다. 화물노조, 금속노조, 지하철 파업, 승리의 예를 복기했을 것이다. 그간의 노하우를 잘 살리면, 의사집단 정도는 쉽게 날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의사집단을 바이든(날리면), 총선의 승리도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그럴 리는 없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의사집단은 조직조차 없고, 전공의의 신분은 수련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의사 집단은 조직이 없다. 개인주의자의 모래알 조직이었다. 의사집단의 카리스마 있는 지도역할은 모자란 “정부“가 했다 . 황당한 정부안의 발표는 의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2000명 증원” 얼마나 멍청하면 저런 주장을 하지? 라고 생각할 때, 설명이 붙었다. 2000명은 과학적이라고. 황당함의 침묵이 잠시 흐르다가 전공의들이 주장하고 학생들도 이야기했다. “나, 안 해.”라고.
의사 조직은 없지만, 인턴부터 노 의사 들까지 대부분 같은 커리큘럼으로, 의학을 배웠던 공감대가 주장의 동질성을 만들었다. 극렬히 저항하지도 않았다. “이제 지쳤으니 집에 갈래.”가 전부였다. 학생과 전공의들은 집으로 갔다. 정부가 강제 명령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여기서 첫 정부의 실수가 나온다. 정부가 아니라고 해도 전공의는 “수련 생”이었고 그 직을 유지할 의무는 없다고 그들은 판단했다. 이미 수련 포기를 많이 봐왔던 현실에서, 수련포기 불가라는 정부의 겁박이 현실 적이었을까? 당황한 정부의 화물연대식 대처는 공 회전 시간만 늘려 갔다. 정부의 겁박을 듣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논리적 모순이 있는 겁박을 누가 들을 것인가?
“너희가 돌아오지 않아 의료 대란이 발생하려고 하니, 돌아오지 않으면 면허정시켜 3개월 돌아오지 못하게 할 테다.”
정부의 명령은 황당했다. 보름정도 의료공백을 만든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으면 3개월 의료 공백을 만들겠다.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논리였다. 그 결과가 의료 붕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모순의 명제였다. 결국 정부는 일단 행정 처벌을 유예했다(물론 모든 일이 끝난 후에는 당연히 선별적이며 잔인한 처벌을 하겠지만)
지금의 정부 행보는 뜨거운 감자를 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선거일까지 폭탄을 잘 돌리는 것이 목표일 것 같다(내가 정부라면). 몇몇 의료기관에 방문해서 선물을 증정한다. 이차병원 활성화에서부터 7000억 건축비까지. 큰 선물이 준비된 것을 착착 보여준다. 가난한 필수과(낙수과)를 향한 급조된 정책은 연일 발표되지만 효과는 없다. 2000명 증원 선언 전에 선결과제로 해야 할 일들이 허겁지겁 쏟아져 나온다. 세상 자체를 소 없는 외양간으로 만든다. 대통령도 나서고 천공도 나서지만 갈 길은 멀고 행보는 꼬여 간다. 왜 싸우게 되었는지 목표가 무엇 인지도 잊어버린 상황이다.
돌아가지 못할 길은 명확하다. 인턴을 이야기해보자. 4월 2일까지 인턴은 수련 등록을 해야 했다. 연간 수련은 불가 해졌다. 복지부의 발표였다. 4월 2일이 지났다. 아주 간단하다. 복지부의 말에 의하면 내년 모든 과의 전공의 1년차는 없다. 가을 턴을 시작해도 내년 1년차는 없다.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모든 사태가 끝나도, 전국의 병원에 금년에 인턴을 끝낸 1년차가 없어진다. 필수과는 대가 끊길 것이다. 당연히 현 1년차는 업무를 떠 맞게 될 것이다. 낙수과의 마지막 전공의가 되지 않기 위한 탈출도 고민할 것이다. 수련을 중도 포기하고 아무도 지원하지 못하는 2025년 인기과의 1년차 전공의로의 신분변화도 노려 볼만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년이 필수과 붕괴 원년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널리 알려질 현 전공의의 복귀율은 필수과를 중심으로 뚝 떨어질 것이다. 필수의료는 붕괴될 것이다.
다른, 돌아가지 못할 길도 정부가 막은 길이다. 전공의에 대한 행정명령을 송달했고 시간이 걸리지만 집행하게 될 것이라고 대통령까지 직접 언급한 이 행정명령의 운명은 참으로 얄궂다.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기조를 지키게 되면, 2024년 대한민국의료는 멸망한다. 행정명령이 전공의 개인에게 내리는 것이라고 착각한 채, 사실 전공의에게 내리는 행정명령이 자신이 매달린 동아줄을 끊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정부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겁박의 수단으로 일부를 희생시키면화물연대처럼 해결될 것을 기대했지만, 톱질하며 절단하고 있는 것이 정부 자신의 오른발이란 것을 그들도 앗뜨거 하며 깨닳았다. 행정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나라의 의료의 기본 동력은 사라져 버리고 필수의료 붕괴, 의료 대란, 병원 도산, 사회 대혼란으로 간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행정명령을 주워 담기도 매우 힘들 것 같다. 차관의 입으로 나온 말이라 차관만 책임지게 하는 방법도 대통령 담화로 사라져 버렸다. 대통령입에서 나온 말을 누가 책임질까? 천공할 일이다(천인공로의 약자다 오해마시길). 행정명령 집행하지 않으면 국가기관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집행하면 국가의료가 파괴되고, 해답은 천공이 알고 있을까?
마지막 돌아가지 못할 길은 2000명이다. 2000명은 현상이 되어 버렸다. 의료계에서 반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의대 열풍 등으로 요약되는 사회 현상이 이미 생기고 말았다. 2000명을 증원하면 의료계는 복귀 되지 못한다. 영원히. 하지만 2000명은 의외의 효과를 주었다. 학원가는 번쩍거리고 있고, 수백만 원 의대 반도 편성되기 시작했다. 지역 민심은 들썩거리고 기대와 전망이 오간다. 기대가 무르 익었는데 누가 용기 내어 취소한다 말할까? 아니 규모를 2000미만으로 줄인다고 이야기할 사람은 있을까? 물론 7:3 법칙의 주창자이신 천공님은 의견을 주셨지만. 게다가 총선까지 패배하고 난다면, 서서 죽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 와중에도 정부는 자살골을 소리 없이 넣고 있다. 4월 2일 전국의 인턴을 모두 수련할 수 없게 만들고는 내년 전공의 1년차의 모집인원을 서울을 줄이고 지역을 늘리겠다고 발표하기도 한다. 오전에는 2000명을 유예할 고민한다고 하다가 저녁에는 아니라고 한다. PA간호사가 업무 숙련도가 높아서 전공의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다가, 간협을 중심으로 PA 전문교육을 실시해본다고 한다. 병원 마다 자체 간호사를 PA로 차출하면서 업무 공백으로 인한 도미노식 붕괴가 나타나고 있고, 무급휴가와 퇴직도 증가하고 있다. 자살골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번판은 성공이다.
진짜 궁금한 것은 애초에 들고 나온 의료개혁을 진행할 능력이 우리 정부에 있었나 하는 질문이다. 내가 판단할 때는 아니요 가 답일 것 같다. 2000명을 제외하고 의료 개혁이나, 의료 제도에 대한 이해, 필수의료 지원 방안에 대한 발표는 즉흥적이고 방어적이며, 비루하다. 한마디로 실력이 없다.
또 한가지, 그렇다면 지금 망가트린 의료를 원점으로 아니 원점 비슷한 부분으로 돌릴 실력은 있나에 대한 질문이다. 이 답 역시 현 정부는 실력이 없다가 정답일 것 같다. 완벽히 중지된 인턴은 어찌 할 것이며, 내년 1년차 부재로 인한 필수의료의 붕괴는 어찌 막을 것이며, 행정명령 남발은 무슨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며, 이로 인한 정부의 권위손실은 어떻게 막을 것이고, 2000명 사태로 인한 사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솔직히 부산대 병원 7000억 지원할 예산이나 있는지.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실력도 없다.
내일은 선거이고 결과가 36간 후면 나올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의료계 싸움에 세상의 도끼자루가 여러 자루 썩고 있다는 것이다. 현정부는 실력이 없다. 그게 이번 선거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의사집단이 떠나는 이유이다. 읍소를 하던, 길에서 절을 하던, 아니면 서서 죽겠다고 선언을 하던, 실력이 없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너희는 실력이 없다. 그것이 이번 사태의 문제점이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