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이
경고성·호소형이었다’고 주장한다.
내란이 실패하자,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은
일이었다는 항변이다.
하지만 수사·재판을 통해 비상계엄은
‘대통령 윤석열’의 오랜 숙원이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처음엔 ‘황당한 음모론’으로 치부됐지만
돌이켜보면 비상계엄의 전조는 명확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11월25일 관저에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청해 저녁을 먹으면서
“나에게는 비상대권이 있다. 내가 총살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다 싹 쓸어버리겠다”고
말했다.
취임 뒤 불과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2023년 하반기 들어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이 불거지고 김건희의
명품 가방 수수가 드러나는 등 정치적 수세가
이어지자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준비하
시작했다고 결론 내렸다.
윤 전 대통령은 안보 라인에 충암고·육군사관학교
출신(김용현·여인형)을 중용하며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2·3 내란의 막후 설계자로 지목되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는
‘여인형, 소형기(이후 방첩사 참모장),
박안수, 김흥준(육군본부 참모부장),
손식(지상작전사령관)’ 등 군 장성 이름이
열거됐는데, 이들은 모두 2023년 10월 전후
진급했다.
2023년 10~11월 군 장성 인사를 통해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정보사령관 라인업이 갖춰졌다.
지난해 3월29일 윤 전 대통령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당시 직책)을 안가에 불러 모으고
‘비상대권’을 언급했다.
4·10 총선을 10여일 앞둔 시점이었다.
내란을 도모할 핵심 세력들의 폭탄주 회합은
더욱 잦아졌다.
지난해 6월17일 안가 모임에는 김용현 처장과
여인형·곽종근·이진우 사령관이 참여했고
김 처장은 이들을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
이라고 치켜세웠다.
지난해 8월12일 윤 전 대통령은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하고, 신원식 장관을
안보실장으로 임명했다.
외형은 영전이었지만 비상계엄 구상에
부정적이었던 신 장관을 ‘이너서클’에서
내치는 인사였다.
비상계엄 실행 계획이 무르익자 충암파 핵심들의
안하무인 행태는 선을 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여 전 사령관은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못 느낀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군복 입었다고 할 얘기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더 ×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여 전 사령관을 감쌌다.
곧 ‘쓸어버릴’ 상대 앞에서나 가능한 반응이었다.
충암파가 국회에서 오만한 기세를 과시한 날,
드론작전사령부는 평양에 무인기를 날려 보냈다.
5일 전 윤 전 대통령의 승인 아래 김 전 장관
주도로 1차 작전이 실행됐고 그날이 2차였다.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찾기 위해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을 도발이었지만 이들에게는
그저 “천재일우의 기회”(10월18일 여인형 메모)일
뿐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실질적인 계엄 모의가
진행됐다. ‘비선 기획자’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그가 이끄는 정보사 중심 사조직은 경기도 안산의
카페와 롯데리아에서 4차례 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거 계획 등을 세웠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9월부터 비상계엄일까지
국방부 장관 공관을 22회 들락거렸다.
비상계엄 선포 전날에도 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 공관을 방문했고 2시간 뒤
김 전 장관은 완성된 계엄 선포문,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을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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