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를 살펴 볼때
신권 즉 신하의 권력이 강하고
왕권이 약해졌을 때 백성들이 살기 좋았던 때가 없었슴.
태조 이방원은 이를 알고 있었고
사대부의 나라를 만들려했던
정도전을 제거하고
외척들을 처단한 거임
강화된 왕권 아래
세종의 정치가 꽃 피울 수 있었던거임
단종 때 김종서, 황보인이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황표정사를 함
조선이 개국 된지 얼마되지 않아
왕의 권한이 쪼그라듬.
성삼문이 복원 된건 200여년 지난 숙종때인 데
이때는 사대부들의 당파싸움으로
어지러운 시대였슴
수양이 계유정난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조선후기의 문란이 재현 되었을 것임
신권이 강한 나라는 의원내각제 생각하면 됨





































단종이 있었다면은 성립은 안하지만
수양은 암군이 맞다
권신의 문제는 있었지만 왕권의 약화는 더 큰 재앙을 불러 왔을 겁니다.
세조가 남긴 업적은 적지 않습니다.
드라마가 망쳐 놔서 계유정난 밖에 기억을 못하는거지요
갈려나간 신하.. 그중 집현전 연구관들..과 종친들.,태종이야 진짜 왕권강화 목적이 있었기에 명분에 의한 숙청이지만
세조는 쿠데타자체가 명분이 없다보니 단종만 들어가면 그냥 숭텅숭텅 무더기로 갈려나간거죠..
쿠데타 자체가 명분이 없다보니.. 그나마 성종이 나름.선방했으나 연산이라는 암군이 존재할수밖에 없는 권력구도가 생겨났고.. 외척,훈구,사림 혼돈의 정치세력들이.조선 전기를 써내려갔죠.,
태종 세종 문종까지 이뤄지던 정통에서 오는 안정적인 권력승계에서 개뜬금포,.
단종때 잘했을것이라는 보장은 없고 만약이지만… 그렇게 조카 죽여놨으면 정치는 더 잘했어야 옳았던 수양이라.생각합니다
백명은 되었을 겁니다
단종 복위에 가담한 인물들은 극소수였습니다
성삼문 박팽년이 집현전 학자의 전부요?
정인지 최항 신숙주 뿐만 아니라 집현전 학자들 많은 수가
훗 날 관리를 했습니다.
드라마만 보면 집현전 학자가 성삼문 박팽년 뿐이고 나라 일 다 한 줄.....
집현전의 역할은 유학 뿐 아니라 이학,서학의 연구도 했던 만큼.. 집현전이 사라졌을때 이미 많은 부분을 잃은거죠
그리고 종친의 숙청과 부재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조선의 혼맥과 권력구도 거기서 나오는 견제 장치가 사라졌기에 훈구세력의 세력화만 강화한거죠.. 왕권강화? 숙청한다고 왕권이 강화되는게 아니죠.. 친왕파의 존재들이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공신이라는 훈구는 친왕파가 아니죠
지금처럼 사회 최하계층에서 고학하고 변호사 시장 거친 대통령이 한번이라도 나올 수 있는 체제가 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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