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8월 14일 밤 10시 20분 강남 역삼동 최고급 룸살롱 서진 회관에는 22살의 고금석이 일행들과 함께 16호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고금석이 속한 조직은 서울 목포파. 이들의 아지트였던 서진 회관에는 거구의 사내들 7명이 등장했고 그들은 17호실로 안내되었다.
이미 잔뜩 취한 상태로 서진 회관을 찾은 17호실 손님들은 웨이터를 불러 돈 4만 원을 주고 위스키를 2병 가져오고 안주는 그냥 달라며 강짜를 부렸다. 그들의 분위기와 외향에 압도당한 웨이터는 군소리 없이 자리를 떠났고 17호실 손님들은 시간이 지나도 주문한 것이 나오지 않자 웨이터를 다시 불러 불평불만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방이 왜 작냐고 시비를 걸던 17호실 손님들은 방이 없다는 웨이터의 말에 그를 폭행했고 이후 16호실에 불려 간 웨이터는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리고 웨이터는 17호실 손님들이 김태촌의 이름을 언급했다고 말해 분위기는 일순 싸해졌다.
사실 17호실 손님들은 김태촌의 범서방파의 방계 조직 중 하나인 맘보파 소속들이었던 것.
이후 고금석과 일행은 화장실에 다녀왔고 복도에서 17호실의 최두석과 마주했다. 190cm 키에 100kg 거구였던 최두석은 헤비급 복서 출신으로 1:1 싸움으로는 김두한 이후로 최고라고 불릴 정도의 강자였고 그는 맘보파의 행동대장이었다.
그는 고금석 일행과 시비가 붙었고 그러던 그때 고금석의 일행이 최두석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눴다. 최두석과 고금석의 일행은 동향 선후배 사이였던 것. 그런데 이를 보던 고금석은 일면식 없는 최두석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고 이에 최두석이 고향 선배도 몰라보냐며 고금석의 따귀를 여러 차례 때렸다. 그리고 고금석은 최두석을 노려보았고 신경전을 펼치던 둘은 결국 싸움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에 최두석은 17호실 일행들을 소환하고 이들은 고금석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보던 고금석의 일행들도 모두 나와 싸움을 벌였다.
사실 맘보 파는 이런 싸움에는 이골이 난 상태라 여유로웠다. 그러나 서울 목포 파는 모두 같은 대학 유도학과 선후배 사이로 그들과는 조금 다른 마음이었다. 당시 서울 목포파 두목 장 씨는 사무라이 문화에 심취한 상태로 사무라이, 마피아 문화를 동경하며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는 전국 조폭계를 정화하겠다는 목표로 조직을 만들고 합숙, 지옥 훈련까지 했다.
맘보파와 서울 목포파의 싸움이 계속되던 그때 서울 목포파 행동대장이 발목에 있던 칼을 꺼냈다. 그리고 이를 본 최두석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찌를 테면 찔러봐"라고 도발했다. 순식간에 치킨 게임이 된 상황에서 서울 목포파 행동대장은 칼로 최두석의 팔을 내리치고 고금석은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맘보파 조직원들은 놀라서 최두석을 데리고 일부는 화장실로 도망가고 몇몇은 17호실로 대피했다. 그리고 서울 목포 파는 차 트렁크에 있던 야구 방망이, 칼을 가지고 와서 무장해 맘보파를 위협했다. 일부는 화장실로 가서 공격하고 일부는 역기로 17호실 문을 열고 들어가 순식간에 칼부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때 가장 앞에서 칼을 휘둘렀던 이가 바로 고금석이었다.
그는 훗날 법정에서 피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서 멈출 수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범죄 사실을 그의 지인들은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24시간보배중복단속 />
어후 링크해주신 유튜브 동영상보고 이어서 무등산타잔이라고 불렸던 박흥숙 사건보니 눈물이....물론 사람을 넷이나 죽인 법죄자이긴 하지만 동영상을 다 보고나니 살인자라 욕할수가 없네요 저도 예전에 기사본 기억이 나는거 같은데 이제와 실제 자세한 내용을 보니 울컥합니다~ㅜ.ㅜ
@24시간보배중복단속 범죄와의 전쟁 선포의 전신이 있었음! 노태우 9공수 여단장 시절 부천 시내에식당인가 주점인가에서 동네 양아치들 행패에 당함! 수모를겪고 동네양아치들 상대로 그자리에서 어떻게 할수 없으니 그냥 저냥 끝나는가 싶었는데 딥빡 친 노태우 담날부터 운동 쫌 한 부사관들한테 사복입고 나가서 양아치 소탕하란 명령 내림! 그당시 9여단 귀성부대(라고 쓰고 세면바리라 읽는다) 출신 부사관들한테는 전설로 내려오는 카더리 통신이 있음!(믿거나 말거나?!) 그때 써먹어보니 효과도 있었고 원래 박정희(쿠데타 후 정치깡패 색출) 전대갈(삼청교육대) 군부들 정치적 위기 또는 정당성,인기,분위기 전환용등으로 전가의 보도 처럼 늘 해오던게 군인,경찰 풀어서 만만한 깡패 소탕, 검경들한테 재벌 기업들 악독기업으로 몰아서 목줄 죄는게 군부독재 출신들의 주특기였음! 그걸 적재적소 시기적절하게 질 써먹은거임! 그렇다고 본문의 절마 저것들이 정권의 희생양은 절대 아님!
지금 용인대
지금 용인대
교복입고 버스탔을때
태극기 티 입고
버스에서 물건팔려한
그너마가
주범 아니었어요?
그너마가 말했는데
ㆍ서진룸싸롱 사건 알렁가 모르겄쏘
하다가 계두식 보고
버스기사한테 차세우라고 하고
내렸는데!
이미 잔뜩 취한 상태로 서진 회관을 찾은 17호실 손님들은 웨이터를 불러 돈 4만 원을 주고 위스키를 2병 가져오고 안주는 그냥 달라며 강짜를 부렸다. 그들의 분위기와 외향에 압도당한 웨이터는 군소리 없이 자리를 떠났고 17호실 손님들은 시간이 지나도 주문한 것이 나오지 않자 웨이터를 다시 불러 불평불만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방이 왜 작냐고 시비를 걸던 17호실 손님들은 방이 없다는 웨이터의 말에 그를 폭행했고 이후 16호실에 불려 간 웨이터는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리고 웨이터는 17호실 손님들이 김태촌의 이름을 언급했다고 말해 분위기는 일순 싸해졌다.
사실 17호실 손님들은 김태촌의 범서방파의 방계 조직 중 하나인 맘보파 소속들이었던 것.
이후 고금석과 일행은 화장실에 다녀왔고 복도에서 17호실의 최두석과 마주했다. 190cm 키에 100kg 거구였던 최두석은 헤비급 복서 출신으로 1:1 싸움으로는 김두한 이후로 최고라고 불릴 정도의 강자였고 그는 맘보파의 행동대장이었다.
그는 고금석 일행과 시비가 붙었고 그러던 그때 고금석의 일행이 최두석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눴다. 최두석과 고금석의 일행은 동향 선후배 사이였던 것. 그런데 이를 보던 고금석은 일면식 없는 최두석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고 이에 최두석이 고향 선배도 몰라보냐며 고금석의 따귀를 여러 차례 때렸다. 그리고 고금석은 최두석을 노려보았고 신경전을 펼치던 둘은 결국 싸움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에 최두석은 17호실 일행들을 소환하고 이들은 고금석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보던 고금석의 일행들도 모두 나와 싸움을 벌였다.
사실 맘보 파는 이런 싸움에는 이골이 난 상태라 여유로웠다. 그러나 서울 목포 파는 모두 같은 대학 유도학과 선후배 사이로 그들과는 조금 다른 마음이었다. 당시 서울 목포파 두목 장 씨는 사무라이 문화에 심취한 상태로 사무라이, 마피아 문화를 동경하며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는 전국 조폭계를 정화하겠다는 목표로 조직을 만들고 합숙, 지옥 훈련까지 했다.
맘보파와 서울 목포파의 싸움이 계속되던 그때 서울 목포파 행동대장이 발목에 있던 칼을 꺼냈다. 그리고 이를 본 최두석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찌를 테면 찔러봐"라고 도발했다. 순식간에 치킨 게임이 된 상황에서 서울 목포파 행동대장은 칼로 최두석의 팔을 내리치고 고금석은 그의 허벅지를 찔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맘보파 조직원들은 놀라서 최두석을 데리고 일부는 화장실로 도망가고 몇몇은 17호실로 대피했다. 그리고 서울 목포 파는 차 트렁크에 있던 야구 방망이, 칼을 가지고 와서 무장해 맘보파를 위협했다. 일부는 화장실로 가서 공격하고 일부는 역기로 17호실 문을 열고 들어가 순식간에 칼부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때 가장 앞에서 칼을 휘둘렀던 이가 바로 고금석이었다.
그는 훗날 법정에서 피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서 멈출 수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범죄 사실을 그의 지인들은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뜻밖의 사건으로 이어진다. 너무도 끔찍한 사건으로 조폭을 뿌리 뽑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범죄와의 전쟁 선포했던 것. 범죄와의 전쟁은 헌범이 부여한 모든 권한을 동원해 조폭을 소탕할 것을 지시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 한 이등병의 양심선언으로 밝혀진 국군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이에 비난을 면치 못한 노태우 정권은 이 사건 폭로 열흘 만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것.
당시 정부는 경찰 16000명 충원했고 이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하루 16시간 이상 근무를 했다. 이에 당시 격무에 시달리던 경찰청 형사국장 과로로 사망했고 그 외에도 당시 순직한 경찰 126명, 부상이 2000명이 넘었다.
이 범죄와의 전쟁으로 조직폭력배 조직 274개를 소탕했고 1421명을 검거했으며 1086명이 구속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폭 시대의 종말이 찾아왔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목포파가 꿈꿨던 일이었던 것.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416/0000264811
기사 출처
https://youtu.be/5uR3VrzCDmk영상
영화 두편 나왓네요
범죄와의전쟁과 모비딕
/> 어후 링크해주신 유튜브 동영상보고 이어서 무등산타잔이라고 불렸던 박흥숙 사건보니 눈물이....물론 사람을 넷이나 죽인 법죄자이긴 하지만 동영상을 다 보고나니 살인자라 욕할수가 없네요 저도 예전에 기사본 기억이 나는거 같은데 이제와 실제 자세한 내용을 보니 울컥합니다~ㅜ.ㅜ
시대의 비극이었던 사건 같습니다 휴우...맘이 무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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