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세이드 IIHS 2열 충돌시험 낙제점 관련 게시글에 달린 댓글입니다.
더 안전한 차량을 "운 좋게 통과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둘째치고 안전도를 평가하는 척도인 충돌테스트의 개념을 가이드라인쯤으로 한정지어 버리시는군요.
지역/소비자 성향에 따라 안전성에 차등을 둬도 된다는 말로도 들리네요.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제조사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출시합니다. 생각있는 제조사라면 아주 오래 전, 충돌시험 기준이 없거나 변별력 없던 시절에도 미리미리 대비해두었고 지금껏 자랑거리로 남아있죠.
사진 속의 카니발(YP)도 공인 충돌테스트 기준에는 없는 빗면충돌을 거치는 모습입니다.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1970년대 시트로엥 CX.
의외로 앞선 기술을 많이 선보이던 당시 시트로엥은 테스트 기준보다 엄격한 빗면시험을 통과하도록 설계했으며 유튜브에 업로드할 정도로 자부심이 넘칩니다.
1970년대 메르세데스 벤츠.
볼보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자체 테스트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직접 충돌사고 유형을 모두 분석한 뒤 50% 이상이 옵셋 충돌임을 발견, 50km/h, 40% 고정벽 조건으로 전세계 최초의 옵셋 충돌시험을 시작하죠.
참고로 1953년 선보인 메르세데스 폰톤도 옵셋 충돌시험에서 차체가 버텨내는 위엄을 뽐냅니다.
1980년대 아우디
1990년 출시된 아우디 100은 Procon Ten이라는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에어백의 하위호환으로 와이어를 이용해 충돌 시 스티어링 휠이 뒤로 밀려들어가 머리부상을 최소화하는 장비였죠.
이러한 경향은 예고 없이 들이닥친 강화 충돌시험에도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1990년 독일 <Auto Motor und Sport>는 인증기관 TUV와 공조하여 최초의 공개 옵셋 충돌시험을 시연, 발표합니다.
차체 전면 50%를 55km/h의 속력으로 15도 기울어진 콘크리트 벽(충격흡수X)에 충돌하는 해당 테스트는 64km/h로 40% 옵셋변형구조물(ODB, 충격흡수)에 충돌하는 지금의 테스트 조건보다 상해율에서 엄격한 측면이 있습니다.
E세그먼트 승용차 9대로 진행된 가운데 독보적인 차체강성을 자랑한 제조사는 메르세데스와 볼보였고 얼마 뒤 추가로 진행한 아우디 100은 상해율까지 저감하여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테스트 기준에만 충실했던 오펠, 피아트, 일본계 제조사는 모두 운전자가 사망할 확률이 높게 나타났고 BMW(E34)도 애매한 점수를 받았죠.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같은 AMS에서 C세그먼트를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현대가 심혈을 기울인 엘란트라는 골프를 꺾고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반면 원가절감이 들어간 엑센트는 나중에 출시되었음에도 형편없는 모습이었죠.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엑센트는 자체 옵셋 테스트를 진행하고 루프가 접히는 등 실내공간 변형이 크다는 점을 확인했음에도 적당한 선에서 출시를 강행한 탓이었습니다.
옵셋 충돌 시 운전석 공간이 110mm나 변형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출시한 카니발은 북미 수출을 위해 변형량을 딱 2cm 줄여서 카니발II를 출시합니다.
EF 쏘나타는 CAD, 실제 충돌시험 모두 차체변형이 컸지만 역시 IIHS 낙제점을 피할 정도로만 개발, 양산했고 조수석, 뒷좌석 더미를 추가하여 북미기준보다 살짝 차체가 무거워진 ANCAP 테스트에서는 최하점을 기록합니다.
EF의 ANCAP 충돌시험.
물론 그 시절에도 모범적인 사례는 있습니다.
크레도스(G-CAR)는 북미에 수출하지 않으면서도 FMVSS 기준의 35MPH 고정벽 완전정면(FWRB)충돌시험과 강화된 측면충돌시험, 심지어 빗면충돌까지 거쳤습니다.
이런 크레도스가 실제 사고에서 한 세대 뒤의 쏘나타(EF FL)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무거워진 점보 디젤 사양의 처참한 충돌시험 결과와 그랜드 스타렉스의 퇴보한 안전성으로 묻힌 감이 있지만 초기형 스타렉스 RV(A1 SWB) 사양도 안전한 고급 RV를 표방하며 320가지의 시험을 거쳤습니다.
에어백 장착 사양과 에어백이 없는 사양을 비교한 것은 물론 옵셋 시험까지 거칩니다.
옵셋 테스트에는 특히 진심이었는데 스타렉스의 판매량이 안습한 관계로 AMS지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TUV측과 공조하여 동일기준으로 충돌시험을 거칩니다. 그리고 경쟁차량(?)이라 주장하던 진짜 MPV 폭스바겐 샤란, 푸조 806(유로밴), 오펠 신트라(폰티악 트랜스스포트) 등에 비해 높은 성적을 거두죠.
기사에서는 마치 별개의 테스트처럼 써있는데 TUV의 시험은 저거 하나입니다. 사진자료는 현대 자체 테스트고요.
그러니 스타렉스 RV와 카니발이 충돌하면 스타렉스가 훨씬 안전한 것도 당연한 일이죠. 해당 사고에서 에어백이 장착된 카니발 운전자는 중상을 입었고 에어백이 장착되지 않은 스타렉스 운전자는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습니다. (경찰청 제공 교통사고 조사결과 기반)
너무 옛날얘기인가요?
64km/h, 40% 옵셋에서도 A필러가 변형되며 한 세대 전 미국/일본/독일의 D세그먼트만도 못한 모습을 보였던 YF는 기본기가 탄탄한 형제차 i40는 물론 크루즈에게도 밀리는 안습한 모습을 보였고
'과다설계'대신 적당히 안전하게 설계하면서 지역과 법규에 따라 에어백 구성, 시트벨트 프리텐셔너 유무를 달리한 팰리세이드는 기준이 조금 바뀌자마자 ANCAP에서는 별 넷, IIHS에서는 최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참고로 시판 중인 현대기아 SUV/MPV 가운데 ANCAP 별 넷은 팰리세이드가 유일하죠.
안전에 적당히는 없습니다. 안전에 타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죠. 설령 양산품에는 어느 정도 선이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더라도 특정 제조사 혹은 특정 모델만 번번이 형편없는 점수를 받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그걸 "다른 제조사의 운"으로 돌리고 해당 국가의 법규와 기준만 만족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아반떼 MD 내수형 임팩트빔 개수 차별, 카니발(KA4) 내수형 스몰오버랩 미대응 차별, 쉐보레 말리부 내수형 스몰오버랩 미대응 차별, 쉐보레 여러 차종의 내수형 에어백 세대 차별, 폭스바겐의 한국 사양 프리텐셔너 차별, 볼보의 한국 사양 에어백 차별 등은 모두 정당한 일이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겠죠?
옛날 한국 시장용 Q7도 그렇고 북미형 팰리도 그렇고 이 급 차량은 패밀리카로 주로 쓰는 차 인데 뺄 걸 빼야…
과대 과소로 판단한다면 과해도 과하지 않은게 안전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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