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사격 도발을 포격으로 응징한 백골부대의 전설, 박정인 장군.
1961년 그가 전방 연대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적이 멋대로 군사분계선을 오가던 시절이었는데, 대대장에게“적이 넘어오는데 왜 그냥 두느냐?”고 물었다. 건드리면 보복을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부하 지휘관에게 “적의 손가락이 넘어오면 손가락을 자르고, 발가락이 넘어오면 발가락을 잘라라. 우리 지역에 침투하는 적은 즉각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그 뒤 박 대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던 인민군에게 사격을 가하고 특공소대를 투입하여 적군 5명을 생포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북한군이 추가 도발을 해오자, 연대장은 확성기를 들고 “전차로 증강한 1개 연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올 테면 오라.”고 소리쳤다. 적은 별다른 공격 없이 돌아갔다. 포로 중 중상자 2명은 숨졌고, 나머지는 판문점을 통해 북송되었다.
1972년 백골부대 사단장으로 부임한 박정인 장군은 부대의 기강을 바꿔놓았다. 취임한 날 전 장병에게 철모를 착용토록 명령했다. 두 번째로 총기 거치대의 자물쇠 제거와 실탄 장전을 지시했다.
이듬해 3월 7일 철원 비무장지대 내에서 표지판 정기 보수작업을 마치고 귀대하던 백골 부대원들에게 북한군이 기습공격을 가해 중대장과 선임하사 등 장병 세 명이 총상을 입었다. 사단장은 현장에 출동하여 마이크로 사격중지를 요구했으나, 적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박 장군은 적 벙커 559 GP를 목표로 포병부대의 105mm와 155mm 포사격을 명령했다. 곡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고, 부상자를 구하기 위하여 백린탄도 발사했다. 적은 사격을 멈추고 도망하기 시작했다. 아군은 적진에 포격을 가하고 부상 장병의 후송에 성공했다.
그날 밤 사단장은 부대 내 모든 군 차량을 동원하여 헤드라이트를 켜고 DMZ 남방한계선까지 돌진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북한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우리 군의 야간기습으로 오인한 김일성은 전군에 비상 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김일성에게 겁을 주기 위한 박 장군의 작전은 성공했다.
귀순한 병사의 증언에 의하면 백골부대 포탄이 막사에 명중하여 인민군 80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군이 백골부대를 가장 무서워하는 부대라고 했다.
한 달 뒤 박 장군은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단장직에서 해임되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박 장군의 영웅담은 육군의 전설이 되었고, 박정인 부대 이름이 남아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북한 공산당들은 약한 자에게는 강하지만, 강한 자에게는 더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박정인 장군은 아들을 육사에 보냈으며, 손자까지 육사에 입학시켜 개교 이래 최초로 3대 육사 동문을 탄생케 한 주인공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 중동부전선 철책선을 북쪽으로 수백m 추진한 21사단장 L소장이 생각난다. 나는 1970년 21사단 63연대 일선 소대장으로 부임하여 새 철책선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일선 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해주던 L장군의 다부진 얼굴이 아련히 떠오른다.
국회의원 '하루' 라도 하면 '국민의혈세' 를 가져다가 '평생 연금' 주는 나라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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