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가 되니 문득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비록 제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는 6.25 전쟁 영웅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대략 1920~30전 쯤 출생하셨습니다.
당시 증조부님은 지역에서 내노라하는 부잣집 이었습니다.
부자인 이유까진 잘 모르겠지만 엄청난 부자였지요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집이 있었고 당시 머슴도 4~5명 둘 정도로 부호였지요
일제강점시 시절 잘 살았으니 아니 그전 부터 잘살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부분은 저의 부모님도 이야기를 안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의 독립을 저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만약 친일파 였다면 저희 집이 떵떵거리며 사는 최소 중산층 아니 부자일텐데
부자가 아니니 친일파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친일파였다면 글을 쓰진 않았겠죠
일제치하 시절이니 할아버지의 형제
저에게 따지면 고종사촌 지간의 할아버지 겠군요
할아버지 형제 중 한분이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도 하고 놀고 하니
할아버지는 형제를 데리러 일본을 여러번 다녀왔었어요
그렇면서 군사 훈련도 받고 하셨겠지요
어느덧 광복을 맞이하니 이념대립으로 한반도는 분열이 되고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등, 고등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은 적으니 할아버지를 전라남도 학도의용군 교육대장 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6.25 전쟁에 참전하셨습니다.
한국은 계속 후퇴를 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 중 전라남도 지역또한 북한에 넘어가는 시기일 겁니다.
북한의 보위부 사람들은 남한의 군 가족들을 찾아가 몰살하였습니다.
저희 집 또한 몰살 대상이 된 것이죠
보위부 사람들은 들어와 우리집 가족들을 몰살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강경하신 저의 할머니는 보위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념 갈등 속 전쟁을 하고, 남편이 군인이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다,
전쟁속 민간인의 학살은 불필요하다, 나를 죽인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죽인다고, 남편이 죽는건 아니니 배고플텐데 밥이나 한술 하고 가라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말을 하셨습니다.
강경한 할머니의 말을 듣고 보위부사람들은 물러나게 되었고, 저 또한 태어나게 된 것이죠
그렇게 보위부 사람들은 물러나게 되었고, 전쟁은 73년동안 휴전이 되었네요
6.25 전쟁일이 다가오면 보지는 못한 할아버지를 한번씩 생각나더라구요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