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로 종로경찰서장이 된 친일파가 있었다.
종로경찰서는 당연히 요직이고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즉, 과거에서 현재까지 100년 동안 종로경찰서장은 요직 중에 요직이다.
서울청장이 되려면 종로경찰서장은 항상 제 1 순위로 올라가고
경찰청장이 되려면 종로경찰서장 경력은 당연했다.
그런 종로경찰서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조차도 되기 어려웠는데
그걸 어떤 조선인이 처음으로 되었는데 그만큼 친일행위롤 했고
독립운동가를 때려잡았으며 얼마나 고문을 해댔는지는 안 봐도 눈에 뻔하다.
이후 그는 황해도 경찰부장을 지내다가 해방을 맞이하니
시쳇말로 조땠는데 점령군으로 들어온 쏘련군에 체포가 되고 1946년 시베리아로 압송되었다.
사망장소 사망시기 불투명해서 생몰년도 미상으로 나온다.
그의 나이 38세다.
그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은 나중에 부산에서 국회의원도 해먹었다.
물론 한번 더 해먹을려다 아버지의 친일행적이 부산시민에게 퍼져 낙선되었다.
그는 현재 "국민의 짐 " 현역 인천 지역구 국회의원의 작은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의 1943년도 발언을 읽어보자
종로는 반도의 중추지대이고 반도인 중상층 계급이 많은 곳으로 반도 민심의 동향을 결정하는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활동가로 필승체제가 서 있지 않으면 병참기지 반도의 사명을 다하기 어려울 줄 안다. 경찰관은 민중의 선두에 서서 계몽과 지도를 하여야 할 것을 확신한다. 나는 우선 결전하 긴급 문제인 방공태세와 근로체제 정비 또는 생산력 확충 등 필승의 온갖 시책의 추진력이 되어 책임을 다하여 나가려 한다.



































잔존쪽바리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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