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를 쓴 채 광주의 참상을 전하는 미국인.
미네소타대학 출신의 팀 원버그
(Tim Warnberg, 5·18 당시 25세),
한국 이름 원덕기. 비빔냉면을 좋아했던 평범한
청년은 46년 전 우연히 항쟁에 휘말렸고
망설임 없이 광주에 남기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광주는 팀을 각성시켰습니다.
팀은 광주를 위해 움직였고 광주는 자연스레 그를
성장시켰습니다. '폭도'가 돼 버린 죽은 자들은
그 덕분에 '시민'의 이름을 되찾았고,
의사가 되려던 그는 광주 때문에 옳다고 여긴
길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 나갔습니다.
인터뷰 영상 속 팀은 약 2분 30초 동안 광주의 참상을
설명합니다.
1978년부터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광주에
머물렀던 팀이었기에, 그는 5·18을 시작부터
오롯이 마주했고 힌츠페터의 카메라 앞에서
명확히 진술했습니다.
팀 원버그
(평화봉사단원으로 광주에 머물다 5·18 경험)
"우리는 집에 가려고 밖으로 나왔고 시내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거리로
진입했고 모든 버스를 되돌려 보냈습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고 골목을 통해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군인들이 들이닥쳐
모든 사람들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남자라면 누구든, 서 있기만 하면
누구든지 다리와 머리를 무자비하게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5월 24일, 항쟁 기간 도중의 인터뷰인데도 팀은
매우 정확히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을,
그는 또박또박 증언했습니다.
팀 원버그
"이들은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거리로 나와 있었고, 모두가 분노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다쳐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엄사령관은
서울과 광주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계엄군이 잠시 물러난) 이후 시민들은 도시 전반을
거의 정리했고 청소 캠페인을 벌였으며 모두가
무기를 내려놓도록 무기를 회수했습니다."
항쟁 한복판에 있던 인물의 현장 인터뷰 영상은
5·18 관련 기록물 중 이번에 공개된 이 영상이
유일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촬영 테이프에 담긴 영상 갈무리.
피투성이가 된 사망자들의 시신이 침상과 바닥에
놓여 있다.
팀의 인터뷰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그가 단순한 목격자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팀 원버그
"I was helping the injured off the street
because I was American..."
"저는 거리에서 부상자 이송을 도왔습니다.
제가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제가 거리를 지나도록 해줬고..."
이 진술은 1980년 5월 19일 찍힌 위 사진과도
일치합니다. 가운데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채
들것을 든 이가 바로 팀입니다.
나경택 (5·18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
팀 원버그 촬영)
"전일빌딩에서 공수부대의 만행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들것에 (환자를)
싣고 나타난 거예요.
실린 사람을 보니까 얼마나 맞았는지 눈알이
빠질 것 같았어요.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하고
외국인하고 또 광주 시민들이 함께 들것을 들고
가기에 사진을 찍었던 겁니다."
이 사진은 2019년 공개된 이른바 '보안사 사진첩'에도
등장합니다. 나 기자가 찍었던 사진을 당시
보안사가 압수했던 겁니다. 당시 나 기자가 렌즈로
본 팀의 모습은 매우 긴박해 보였습니다.
나경택
"공수부대에 맞을 각오를 하고 저렇게 했던 것이죠.
그런 마음, 그런 용기를 보며 사진기자로서
'저건 역사다'라는 생각에 기록했던 겁니다."
팀 바로 뒤에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남성 또한
그를 또렷이 기억합니다.
의사가 아닌, 당시 광주CBS 보도부 차장이었던
노병유 기자는 최루탄을 피해 들어갔던
작은 병원에서 부상자를 부축해 온 팀을
처음 만났습니다.
노병유 (5·18 당시 광주CBS 기자, 팀 원버그와
들것으로 환자 후송)
"그때 팀을 보니까 입술에 피가 이렇게 묻어 있어요.
이렇게 흘러내린 피가..."
노 기자는 병원장으로부터 의사 가운을 빌려 입고
피를 흘리고 있던 팀과 함께 병원을 나섰습니다.
두 사람이 들것을 든 모습은 당시 광주 동구청
상황일지에도 남아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람한 일지에는
"CBS 노병유(보도부 차장), 미국인 1명. 남자 1명
머리 박살. 단가(들것을 뜻하는 '담가'의 오기)에
싣고 관광호텔 쪽으로 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노병유
"'이 환자, 우리 병원에서는 힘들다' 그런 이야기를
팀과 병원장 둘이 하고 있었어요.
그냥 평상복으로 가면 힘들 것 같고
'내가 빨리 의사 옷을 입어야 되겠다' 생각해
병원장에 가운을 달라고 했어요.
앞에 팀을 세운 것은 '외국인이니까 아무래도
좀 괜찮겠지' 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 팀도 얼굴에 손을 대고 있잖아요.
아마 최루가스 때문일 것입니다."
광주를 덮친 국가폭력의 격랑. 팀은 미처 피할 수
없었고, 애써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우연히 광주에 연루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연대를 택했습니다.









































아직도 이땅엔 광주학살을 외면한체
내란을 저지르는 개막장 당과 그들을 추종하는
2찍들이 판 칩니다.
그런자들을 몽둥이로 두들겨 패, 눈알리 튀어 니오도록
해야합니다. 개독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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