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東北至鐵离國。南至阿里眉等國界。居民言語、衣裝、屋宇、耕養稍通阿里眉等國[二二],無君長,皆雜處山林。不屬契丹統押,亦不與契丹爭戰,復不貢進,惟以大馬、蛤珠、鷹鶻、青鼠、貂鼠等皮、膠魚皮等物與契丹交易。西南至上京五千餘里。
次東北至靺羯國[二三]。東北與鐵离國為界,無君長統押,微有耕種。春夏居屋室中,秋冬則穿地為洞,深可數丈而居之,以避其寒。不貢進契丹,亦不爭戰,惟以細鷹鶻、鹿、細白布、青鼠皮、銀鼠皮、大馬、膠魚皮等與契丹交易[二四]。西南至上京五千里。
거란국지 남송의 섭융례가 편찬한 책
정동북에는 철리국이 있다. 서남쪽으로 상경에서 5천여리거리이다.
동북에는 말갈국이 있다. 동북은 철리국과 경계이다. 서남쪽으로 상경과 5천여리이다.
위의 기록에서 고대에 그나라의 수도를 중심으로 거리를 측정하는 것을 알수 있다.
이해에 발해왕 인수가 졸하였다.
시호를 선왕(宣王)이라 하였다. 아들 신덕(新德)이 일찍 죽었으므로 손자 이진(彛震)이 왕위에 오르고 연호를 함화(咸和)로 고쳤다. 그 이듬해에 당의 조명으로 작위를 습봉하였다. 인수는 바다 북쪽의 여러 부족을 토벌하여 크게 강토를 확장하였다. 대조영 이래로 자주 여러 학생을 당에 보내어 제도를 배웠으므로 이때에 이르러 드디어 해동의 강성한 나라가 되어, 숙신(肅愼)ㆍ예맥(濊貊)ㆍ옥저(沃沮)ㆍ고구려ㆍ부여ㆍ읍루(挹婁)ㆍ솔빈(率賓)ㆍ철리(鐵利)ㆍ월희(越喜) 등의 옛땅을 차지하고, 5경 15부 62주가 있었으며, 예악과 제도는 대개 중국을 모방하였다고 한다
동사강목 제5상 경술년 흥덕왕 5년(당 문종 태화 4, 830)
대상 유검필(庾黔弼) 등에게 흑수(黑水)ㆍ달고(達姑)ㆍ철륵(鐵勒) 등 여러 번인(蕃人)의 굳센 기병 9천 5백 명을 거느리게 하고, 우천대장군(祐天大將軍) 정순(貞順), 천무 대장군(天武大將軍) 종희(宗熙), 한천 대장군(扞天大將軍) 김극종(金克宗) 등에게 보군 3천을 거느리게 하여, 합하여 중군(中軍)을 삼았다. 또, 대상 공훤(公萱), 장군 왕함윤(王含允) 등에게 보군ㆍ기병 1만 5천을 거느리게 하여 원병(援兵)을 삼았다
동사강목 제6상 > 936년
철리혹은 철륵부족은 원래 발해에 속해있었는데 발해가 망하자 흑수말갈과 함께 고려에 소속되었다. 국사학계의 띨빵이들은 어떤 부족이 어떤 국가에 속해있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3가지 조건이 있다.
1.세금을 내야한다.
2.병역의무를 져야한다.
3.부족의 땅에 본국군대가 주둔할수 있어야 한다.
○ 철리국(鐵利國) 추장(酋長) 나사(那沙)가 여진의 만두(萬豆)를 시켜서 말과 초서(貂鼠)ㆍ청서(靑鼠)의 모피를 바쳤다.
○ 교하기를, “백성 중에 나이가 70 이상으로 관작이 없는 자에게 모두 정위(正位) 계급을 주라." 하였다.
고려사절요 제3권 >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갑인 5년(1014), 송 대중상부 7년ㆍ거란 개태 3년
○ 철리국(鐵利國)이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전과 같이 귀부하기를 청하였다
고려사절요 제3권 > 현종 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신유 12년(1021), 송 천희 5년ㆍ거란 태평(太平) 원년
철륵즉 철리부족은 고려의 전쟁에 사병이 되어 참전했으며 부족장이 스스로 고려에 귀부즉 고려에 속한 부족임을 말하였으며 세금으로 모피를 자주 바쳤다. 고려는 관직을 주어 철륵부족을 확실히 관리하고 있음을 기록했다.즉 철륵부족은 고려의 제후국이 맞다.물론 모든 철륵 부족이 고려에 속한 것은 아니다. 요나라기록에는 요나라에 속해있다라고도 써있기 때문이다. 요나라의 수도에서 5천리북쪽에 있다라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고려의 수도가 요나라의 수도 남쪽에 있기 때문에 고려의 수도에서 철리부족은 5천리이상 북쪽에 있다.
《연번로속집(演繁露續集)》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려의 속군(屬郡)에 강주(康州)가 있는데, 고려에서 남쪽으로 5000리 되는 곳에 있으면서 명주(明州)와 마주 보고 있다. 강주의 이웃 군을 무주(武州)라고 한다. 귤과 유자가 생산된다.
고려에서 남쪽이라 함은 다른 기록처럼 고려수도 개경에서 남쪽으로 임을 알수 있다 .고려사지리지에는 분명히 만리라고 되어 있고 고려사에 보면 고구려보다 동서는 짧아도 남북은 더 길다라고 하면서 남북만리임을 드러냈는데 찌질이들이 믿지를 않고 고작 천리도 안되는 소국으로 국사책에 그려 놓았다. 매국노가 따로없다
고려는 수도에서 동북쪽으로 5천리이상 남쪽으로 5천리로 대략 만리가 맞다.
매국노 등신들이 내세우는 고려지도
문헌통고라는 원나라기록에도 고려는 동서3천리 남북6천리로 나온다. 덜떨어진 등신들이 국사책을 움켜잡고 놓지를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각오해야 할 것이다.
실제 고려지도 원나라가 고려북계와 남계일부를 차지했기 때문에 남북6천리라고 기록한 것이다.
저게 자랑스러우면
원나라한테 항복해서 태자가 변발하고 짱개들 똥꼬 빨아주던 역사는 그럼 몹시 부끄럽겠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