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게를 보니 일빠 한명이 출몰했네요 ???
그래서 겸사겸사 미약한 지식이지만 적어봅니다.
많은분들이 6.25전쟁때 일본이 경제적으로 회복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정확히는 일본은 3번 빨대를 꽂았습니다.
1. 20세기 초반
1895년 청일전쟁후 3억6천만엔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받아냄. (현 3조6천억엔)
일본 정부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졸라 짭짤하다고 인식하고 바로 10년후 러일전쟁 일으킴
1905년 러시아 전쟁배상금 지불 거절 - 일본정부 20억엔이상 전쟁자금 고스란히 적자
(그 당시 일본 GDP의 2배 이상의 막대한 금액)
일본 국가재정 파탄위기, 물가폭등, 군인유가족 지원 불가능, 일본내 폭동 발생
> 서둘러 조선병합을 위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식민지 경제체제로 전환을 시도
이후, 조선과 대만에서 본격적인 피빨기에 들어가서 세입을 확보하고 다시 군비 증강시킴.
조선근대화론이란 얼마나 개뻥인지 아시겠죠 ?
지들 재정이 파탄났는데 무슨 조선을 근대화시킴 ??
2. 6.25 특수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여기서는 한국전쟁 전 일본이 어떤 상태였는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전쟁 후, 미군정 시대 전쟁때 발행했던 전쟁국채 남발로 인플레이션 발생
1947년에는 초인플레이션에 가까운 100%가 넘는 인플레이션 발생
1949년 미군정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하여 360엔/달러 고정환율 정책 도입
한국전쟁 이전의 실업율은 약 10%대로 추정 - 통계가 거의 없었습니다.
암시장이 전체 유통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준 무정부 상태였음
쌀, 석유, 의복등을 배급제 실시
한국전쟁 이후,
실업율이 낮아져서 1960년대에는 2% 실업율 달성.
완전고용에 가까워져서 내수 경제 살아남.
미국의 막대한 원조와 물품 주문으로 제조업 부흥
일본의 전후부흥의 발판이 됨
3. 한일협정 1965년
배상금 3억달러, 2억달러 저리 원조 = 총 5억달러의 자금이 대한민국으로 유입
당인리 발전소, 포항제철, 산업설비 인프라에 투자 > 미츠비시 상사 독점 !
이 당시 일본의 GDP는 약 970억불. 일본 GDP의 0.5%가 넘는 금액이 미츠비시 상사에게
오더로 들어옴
[박정희의 일본 만주육사시절 은사가 미츠비시 상사의 고문으로 있었다고 함. 이 사람이
한일 수교 이후 미츠비사 상사의 대표로 청와대 방문]
이후, 미츠비시 상사는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 최대의 종합상사 자리를 차지 !!!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것들
1. 일제강점기 조선 근대화론 - ㅈ이나 까라고 하셈. 러일전쟁때 발생한 막대한 적자 메울려고
조선 침략한 놈들이 행여나 조선을 근대화 시키려고 했을라고.
2. 일제강점기 근대 교육론 - 전형적인 결과론임. 일제의 의도는 지들 대신 식민지를 통치할 사람을
필요로 한것임. 마치 영국이 인도인들에게 대학교 교육시킨것처럼
3. 강제노동과 위안부가 없었다 - 이게 눈가리고 아웅인것이....위안부도 명목상 화대가 있었음
일제가 군인에게 월급대신 지급한 군표를 화대로 지불하도록 했음
이런 군표는 1944년 후반기부터 종이조각과 비슷해졌음.
일본제국육군의 장교 (위관급) 월급 가지고는 (군표) 싱가폴에서 라멘
한그릇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수기가 남아 있음. 1944년 ~ 1945년
1951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협약에서 군표의 화폐교환을 거부했음
=> 1941년 군표 1엔 = 일본 돈 1엔
1943년 군표 3.8엔 = 일본 돈 1엔
1944년 군표 20엔 = 일본 돈 1엔
1945년 군표 1,000엔 = 일본 돈 1엔
=> 뉴라이트 쪽에서는 버마쪽에 잡혀갔던 한국인 위안부의 통장 사본을 올리고는 위안부가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고액수익을 올리는 고급 창부라고 왜곡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절대로 그런것은 아니고, 통장거래 내역을 보면은 1944년 말부터 거액의 저금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1945년 초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입금됩니다만.....
버마에서 일본군 군표는 임팔작전 이후 휴지조각이었습니다.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그럼 전 이만...총총....




































우리도 쪽바리랑 짱개랑 전쟁나서 우리가 양쪽에 포탄 팔아먹으면 G3 진입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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