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년 전 39년 생이신 홀로 계신 아버님 댁에 가면 항상 그 연세 또래의 동네 분 10여명의 어르신들께서 제 집처럼 사용하며 정보나 대화 나누시는 것 보면서 아버님 적적하심이 안심도 되고 해서 식사도 사드린 적도 많긴 했는데 10년 지난 지금 아버님 외에 그 10여명의 분들 모두 돌아가시고 적적함 속에 홀로 외로우신 것 같아 신경은 더욱 써드리나 당신들만의 위로와 위함에 비할 바가 안될 것 같아 매우 염려스럽답냐다
얼마 전 단골 시장 닭집이 문 닫았습니다
닭 삶아 먹을 때 오리 포 떠서 집에서 구워 먹을 때
치킨 먹고 싶을 때 저렴하고 무료 배달까지 해주던 집인데
갑자기 문 닫았더군요
생각해보니 결혼해서 처음 이 동네에 정착한 20년 전부터 이용했더군요
세월이 흐르면서 오래된 집들이 문 받는게 안타깝습니다
이제 똑같이 20년 넘게 이용한 족발집 밖에 안남았네요 ㅠ
대전 용두동시장에 뽀뽀분식 손칼국수집을 중학교때부터 다녔고 그사이 결혼하고 애둘도 군대를 다녀올 시간이 지날정도로 오래 다닌집에 비빔칼국수 하나는 정말 최애 음식이었는데 와이프랑 식사 하러 간날 주인 아주머니가 아이고 오늘은 장사 못하는데 하시길래 왜요?? 물으니 오늘부로 장사 접으신다고 ㅠ.ㅠ 이유가 뭐냐 물으니 이제 아저씨가 나이도 드시고 힘이 들어서 손칼국수 반죽도 어려우시다고 그래서 그만두시고 조카가 할거라고 하시면서 내 손을 잡고 우시는데.... 하 주인 두분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나는 스스로를 도박꾼이라 부릅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지만, 또 다른 삶의 한쪽에는 언제나 도박이 합께합니다. 법의 눈으로는 스포츠라 불리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도박일 뿐이죠.
계절은 나를 이끌어 다른 곳으로 데려갑니다. 늦가을에서 겨울의 끝자락까지는 미시시피의 빌럭시로. 한때 미국 3대 카지노 도시라 불리던 곳. 나는 도박과 낚시를 번갈아 즐깁니다.
초여름이 오면 발걸음은 노스캐롤라이나로 향합니다. 1990년대 초부터 함께해온 산악자전거, 그리고 산을 오르는 기쁨이 그곳에 있습니다. 산길을 달리고 땀을 흘린 뒤, 다시 카드판에 앉아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죠.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이 머무는 곳은 플로리다 입니다. 늦겨울에서 봄의 끝자락까지.
오징어와 삼치, 고등어만 한 전갱이를 낚으며. 그리고 홀덤 테이블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낚으려합니다.
도박은 텍사스 홀덤입니다.
다른 게임에서 때로는 손실을 보지만, 홀덤은 언제나 경비를 보전해줍니다.
그것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나의 길을 지탱해 주는 또 다른 기둥인지도 모릅니다.
플로리다에는 은퇴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낮에도 클럽에 모여 웃고, 담소를 나누고, 식사도 함께합니다. 어떤 클럽의 음식은 기대 이상이기도 합니다.
젊고 섹시한 서버들과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때로는 점심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한낮의 잠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곳의 하루는 고요하고도 따뜻합니다.
내게 다가와 친절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군에서 복무했던 이들, 특히 한국 땅을 거쳐 간 이들은 각별한 호의를 보여줍니다. 의사, 법조인 출신도 많은 곳입니다. 저마다 열심히 살아온 흔적을 가진 이들이 그곳에 앉아 있죠. 그곳은 돈과 시간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닌이들도 있죠. 저 처럼.
해마다 2월이 되면 나는 다시 플로리다로 향합니다. 익숙한 얼굴들을 찾지만, 해마다 한두 명은 자리에 없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묻기가 두렵습니다.
언젠가 나 또한 그럴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할지도 모르죠. 매년 이 계절에 어김없이 나타나던, 그 코리안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잘 다니던 횟집이 있음. 회 먹으면 민어 부레나 취치,홍어 간 같은 거, 서비스로 주고. 항상 기쁜 얼굴로 맞이 해주던 가게인데.
어느날 두분다 안보임. 아줌마가 암 때문에 치료 중이라 친척이 대신 봐 주고 있다고.
그런데 그 친척 돈에 미쳤음. 음식값이 오르고 양이 줄고. 심지어 속이기 까지 하고.
그래도 가끔 갔는데 결국 안돌아 오시고 가게도 없어짐.
이집이 쌀국수는 맛이없는데
돈까스가 맛있어서 자주갔던곳인데 폐업했씁니다. ㅜㅜ
제가 사장님한테 대놓고
쌀구수 맛없다.
돈까스전문점으로 다시하라고 저번부터 말은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똥칠갑은 괜찮은데 씻자고 할때 협조 좀 잘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젊은사람들은 백반집 고생스러워 안하고 프렌차이즈만 늘어가고
예전부터 해오시던 할머님들은 이제 다 연세드셔서 가게가 하나둘 없어지니 ㅠㅠ
자영업해서 매일 밥 사먹으니 일반 식당은
메뉴가 너무 반복적이고 백반집이 집밥느낌으로 건강식같고 좋았는데ㅠㅠ
이집이 쌀국수는 맛이없는데
돈까스가 맛있어서 자주갔던곳인데 폐업했씁니다. ㅜㅜ
제가 사장님한테 대놓고
쌀구수 맛없다.
돈까스전문점으로 다시하라고 저번부터 말은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ㅋㅋㅋ
ㅋㅋㅋ2
아들은 천정에 붙어있음
진짜 얼른 치료약좀 나왓으면 좋겟네요.
상용화가 아직이구..
우리 아빠도 안돌아가셨을....
젊은사람들은 백반집 고생스러워 안하고 프렌차이즈만 늘어가고
예전부터 해오시던 할머님들은 이제 다 연세드셔서 가게가 하나둘 없어지니 ㅠㅠ
자영업해서 매일 밥 사먹으니 일반 식당은
메뉴가 너무 반복적이고 백반집이 집밥느낌으로 건강식같고 좋았는데ㅠㅠ
그러나 어쩌겠어요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인데
저도 집에서 중증 파킨슨, 치매 어르신 10년 모셨는데,
내 인생 10년이 어디로 갔는지 기억도 없네요.
울 마누라는 더 하겠지만...
우리 외할머니 보고싶다... 우리 외할머니도 치매셨는데...
하늘에서 우리 엄마랑 우리 외할머니 모녀지간에 아프지않고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 다니시며 늘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겠지...
닭 삶아 먹을 때 오리 포 떠서 집에서 구워 먹을 때
치킨 먹고 싶을 때 저렴하고 무료 배달까지 해주던 집인데
갑자기 문 닫았더군요
생각해보니 결혼해서 처음 이 동네에 정착한 20년 전부터 이용했더군요
세월이 흐르면서 오래된 집들이 문 받는게 안타깝습니다
이제 똑같이 20년 넘게 이용한 족발집 밖에 안남았네요 ㅠ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는데
아프기 시작할때 여행 다니신다고 하니
너무 맘이 아프네요.
행복하시길..
계절은 나를 이끌어 다른 곳으로 데려갑니다. 늦가을에서 겨울의 끝자락까지는 미시시피의 빌럭시로. 한때 미국 3대 카지노 도시라 불리던 곳. 나는 도박과 낚시를 번갈아 즐깁니다.
초여름이 오면 발걸음은 노스캐롤라이나로 향합니다. 1990년대 초부터 함께해온 산악자전거, 그리고 산을 오르는 기쁨이 그곳에 있습니다. 산길을 달리고 땀을 흘린 뒤, 다시 카드판에 앉아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죠.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이 머무는 곳은 플로리다 입니다. 늦겨울에서 봄의 끝자락까지.
오징어와 삼치, 고등어만 한 전갱이를 낚으며. 그리고 홀덤 테이블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낚으려합니다.
도박은 텍사스 홀덤입니다.
다른 게임에서 때로는 손실을 보지만, 홀덤은 언제나 경비를 보전해줍니다.
그것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나의 길을 지탱해 주는 또 다른 기둥인지도 모릅니다.
플로리다에는 은퇴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낮에도 클럽에 모여 웃고, 담소를 나누고, 식사도 함께합니다. 어떤 클럽의 음식은 기대 이상이기도 합니다.
젊고 섹시한 서버들과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때로는 점심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한낮의 잠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곳의 하루는 고요하고도 따뜻합니다.
내게 다가와 친절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군에서 복무했던 이들, 특히 한국 땅을 거쳐 간 이들은 각별한 호의를 보여줍니다. 의사, 법조인 출신도 많은 곳입니다. 저마다 열심히 살아온 흔적을 가진 이들이 그곳에 앉아 있죠. 그곳은 돈과 시간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닌이들도 있죠. 저 처럼.
해마다 2월이 되면 나는 다시 플로리다로 향합니다. 익숙한 얼굴들을 찾지만, 해마다 한두 명은 자리에 없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묻기가 두렵습니다.
언젠가 나 또한 그럴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할지도 모르죠. 매년 이 계절에 어김없이 나타나던, 그 코리안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오늘 우리아들 결혼해서 너무 기쁜데, 눈물나게하네.
너~, 나빴다. 아울러 남은인생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가게 주인 내외분)
ㅜㅜ
그 주인에 그 단골~♥
저같아도 식사비에 여행가시는데 맛있는거 사드시라고 더 드렸을거 같네요
저도 공감합니다.
똥칠갑은 괜찮은데 씻자고 할때 협조 좀 잘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어머니 5념 넘게 모시다 올 초에 보내 드렸어요.
너무 힘들어 같이 죽자라는 험한 말 하기를 여러번. 지금에 와서야 후회막급이지만 그 순간엔 진심이 50그램 쯤은 묻어있었을...
많이 힘드시겠지만 후회하실 일은 가능한 피하시길..ㅠㅠ
아... 친목모임이라도 나가야 몇달에 한번씩 얼굴이라도 보겠구나 싶어 모임나가기 시작한지 10년쯤 되네요...
그 10년 동안에도 암으로 먼저 간 형... 치매로 연락 끊긴 형..
머지않은 미래에 내차례도 오겠지만 그때까지 재미나게 살아보려구요...
행복한 세상밉니다
어느날 두분다 안보임. 아줌마가 암 때문에 치료 중이라 친척이 대신 봐 주고 있다고.
그런데 그 친척 돈에 미쳤음. 음식값이 오르고 양이 줄고. 심지어 속이기 까지 하고.
그래도 가끔 갔는데 결국 안돌아 오시고 가게도 없어짐.
부디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가시길...
할머니께서 하시던 가게를 지금은 따님과 며느리가 하고 있네요
할머니때 만큼의 맛과 정은 안느껴지지만 그때의 감정으로 아직도 먹고 있습니다
인천 부평에서 유명한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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